냉장고 구석에 남겨진 채소들을 꺼내는 순간이 있다. 시들시들해진 파, 조금 물러진 당근, 언제 샀는지도 기억 안 나는 양배추 한 조각. 겉보기엔 버려야 할 것 같지만, 하나하나 꺼내 다듬다 보면 아직도 쓸모는 충분하단 걸 알게 된다. 이걸로 국을 끓이거나 볶음을 만들고 나면, 의외로 맛있고 근사한 한 그릇이 완성되곤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비슷한 데가 있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고 해도, 그걸 잘 엮어내는 순간에 뜻밖의 따뜻함이 생겨난다. 꼭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마음이 채워지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이 모여 어느 날 문득 큰 만족을 안겨주기도 하더라.
남은 채소로 한 끼를 만들며 드는 생각이 있다. 처음부터 좋은 재료로 준비된 요리가 아니라, 남은 것들을 모아 어떻게든 끼니를 차려내는 그 과정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긴다. 잘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도, 정성을 들여 만든 한 그릇엔 따뜻함이 담겨 있단 걸 느끼게 된다.
버려질 뻔했던 채소들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나도 뭔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부족해도 다시 쓸 수 있다는 것. 삶도 그렇게, 버려지는 게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다시 쓰일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느낌이다.
결국 풍요란 건, 많은 걸 갖고 있을 때가 아니라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길 때 생기는 거 아닐까. 채소 몇 개로 만든 밥 한 끼에도 마음이 채워지는 걸 보면 말이야. 오늘 하루도 그런 따뜻한 마음 하나, 작은 순간 하나로 충분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