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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도 나였다

by 밤하늘 읽는 시간

우리는 가끔 어떤 맛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쓰거나, 지나치게 강하거나, 낯설고 낯가림 많은 맛. 입 안에서 오래 맴돌지도 않고, 젓가락은 조용히 그 옆을 피해 간다. 처음엔 왜 그런지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불편해서,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싫어하는 걸 나름대로 구분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더 명확해지고, 무엇을 피하는 사람인지는 더 익숙해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때때로 마음이 덜 날이 선 날엔, 예전엔 못 먹겠다 싶었던 음식이 어쩐지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제육볶음 위에 깻잎을 살짝 얹어보기도 하고,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밥에 비벼보기도 한다. 그렇게 오래 피해왔던 맛이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릴 때가 있다. 그 맛이 갑자기 바뀐 건 아닐 텐데, 내가 조금 달라졌거나, 혹은 그냥 예전만큼 예민하지 않아 졌거나. 어릴 땐 왜 그게 그렇게 싫었는지, 곰곰이 떠올려보면 이유가 흐릿하다.


이런 변화는 입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에도 오랫동안 외면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쉽게 지치는 성격, 남들보다 느린 속도, 설명할 수 없는 조바심. 말로 꺼내기 민망하고, 괜히 내보이면 흠처럼 보일 것 같아 조용히 덮어둔 마음들이다. 한동안은 그게 현명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덜 드러내고, 덜 흔들리며, 덜 복잡하게 살아가는 방식. 그렇게 나는 나를 선별해 보여주고, 골라내며 버텼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런 마음들 곁에 오래 앉아 있게 되는 날도 있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익숙해진다. 전보다 좀 덜 거슬리고, 덜 불편해진다. 마치, 깻잎 한 장쯤은 괜찮다고 느껴지는 어느 점심처럼.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게 있어서 전체가 조금 더 진해지는 기분.


내가 싫어했던 맛, 그 속에 내가 없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는데, 내가 미처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 그걸 단번에 사랑하긴 어렵겠지만, 피하지 않고 함께 둘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두고 살아가는 일, 어쩌면 지금은 그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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