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꽃이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피어난 꽃이 주는 인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으며 특히 봄기운이 더해져 감각하는 내 머릿속에서 그것은이미 보편적인 꽃들 중 하나로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문득 꽃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꽃은 오랜 세월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고 인간의 삶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을진대, 인간은 그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불려 온 반면, 꽃은 속屬 또는 종種의 이름으로 불리거나(가령 진달래꽃) 단순히 '꽃'이라고 불려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관찰하는 꽃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동안 꽃이 가진 고유의 무언가를 꼭 같이 느꼈을 것이므로 어원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미흡하긴 해도 영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익숙하기 때문에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꽃의 영어 단어는 flower 또는 blossom이다.
먼저 blossom의 경우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은 인도 유럽어의 "내뿜다", "부풀어 오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bhle-'가 영어와 독일어의 접두어 'blo-'로 계승되었다고 본다.
flower의 어원은 라틴어의 flos, flor-로부터 출발해 flo-를 접두어로 하는데, 이는 flour로 이어져 "번영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blow는 꽃망울이 피어나는 형상을, flourish는 꽃이 피는 봄날의 이미지를 '번영'으로서 형상화한 것을 의미하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말로 꽃은 "튀어나온"의 의미를 가진 '곶'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 '골' 그리고 '가지'도 유사한 의미를 공유한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의미는 'blow'이다. flow도 이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blow는 씨앗의 퍼짐을, 그리고 flow는 가령 민들레 씨앗의 부유를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 또, 꽃이 피고 지는 것은 곧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때 순환적 흐름의 의미로서 flow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이것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꽤 낭만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 즉 순수한 꽃의 모양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내 언어 능력은 참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박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짧은 단어 조합을 선택하고 싶었다.
'피다'의 [핌]? 어감이 좋지 않다.
'꽃이 트다'의 [틈]? 어감이 좋지만 꽃이 튼다고 하지 않으므로 폐기했다.
'비롯하다'의 [비롯됨]? '비롯하다'라는 말은 '시작하다'와 같은 의미인데, 꽃이 피는 것은 비록 시작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는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사용하고 싶어 폐기했다.
'움츠림을 풀다'와 같은 말도 생각했지만 말이 너무 길다.
결국 차선으로 [여리게 핀]이라는 단어로 그날의 관찰을 결론지었다. 작고 소박한 꽃의 피어있는 상태로 나타내고 싶었는데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 형으로 사용한 이유는 진행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리게 피는]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글자수가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자를 줄였다.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같은 생명으로서 봄을 맞이한다는 기분이 든다. 꽃은 봄을 알리는 자명종 시계 같다.
후각인지 촉각인지 알 수 없는 감각으로 봄을 체감할 때가 있다. 언제나 이 느낌을 글로 잡아내고 싶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움츠렀던 꽃이 돋아나듯 나의 글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혹여 이 느낌이 다시 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하여 봄의 기분을 더욱 음미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조급한 마음에 충분한 공부를 하지 못한 채 또 글 하나를 기어코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