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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Space Jun 19. 2021

자대 배치받는 날(1)

삶의 그림자, 규범規範

   갤러리를 구경하다가 재작년 여름에 무궁화호에서 찍었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랑 강릉 데이트를 하며 난생처음 무궁화호를 탔던 억을 간직하고자 남겼던 것다.

  지만 의도와 달리, 논산에서 파주 자대 배치를 받던 날 장면이 사진 위로 포개어지며 그날의 기억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17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정신은 온데간데없었다. 분대장은 수 십 명의 장병을 배출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를 근거로 신속한 행동을 요구했다. 우리의 임무는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짐을 싸는 심정을 알기는 하는지, 분대장은 우리를 재촉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우리는 고된 훈련을 함께 해 온 서로에게 제대로 인사할 겨를도 없이 헤어져야 했다.


  교육대 건물 밖으로 나와, 행선지에 따라 조를 나눈 뒤에 역을 향해 출발했다. 의류대(생활복 등 자대에서 사용할 보급품을 담는 더블백. 아마 20Kg쯤 됐으려나.) 그 상당한 무게로 가슴을 옥죄는 바람에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였고, 훈련소를 벗어나기도 전에 지쳐 땀을 질질 흘렸다.

  행군이 따로 없었다. 모두가 무게에 짓눌려 고개를 푹 숙였다. 허리에서 머리까지 오는 긴 더블백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거북이 같았다. 나 역시 거북이의 대열에서 느릿느릿 걸었다. 그리고 어느새 위병소를 통과했다.


  울창한 나무의 그늘 때문이었는지 단지 심리적 이유였는지, 위병소를 사이에 둔 두 공간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 것으로 기억한다. 하늘이 열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려나, 전히 대비되는 하늘의 조명은 세상 이렇게 밝은 곳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닫게 해 주었다.


  횡단보도 위로 사람과 차들이 신호에 맞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회의 기운이 반가웠. 민간인들이 우리를 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세상 구경을 하니 힘들었던 감정이 완화되며 눈에 풍경을 담을 여유도 생겼다.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다 보니 저 앞에 육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인원이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육교로 우회해야만 했다. 대열은 육교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레 보폭을 줄였다.


  무게가 꽤 실린 상태에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도타기 응원을 하는 것 마냥 저 앞에서부터 "계단 조심!"이라는 외침이 용사들의 입을 타고 뒤까지 전달된다.

  안전을 담보로 하는 상황에는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다들 열심히 복명복창(상급자의 지시를 되풀이하여 는 것)을 한다.


  교에 올라 내려다본 도로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똑같은 디지털 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머리에는 똑같이 베레모를  긴 더블백 등딱지를 메고 있었다.

  걸음의 무게는 모두 달랐을 터이다. 누군가는 설렘의 발걸음으로, 누군가는 두려움의 발걸음으로 그 대열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열의 걸음이 빨라지면 빨라지는 대로, 멈추면 멈추는 대로 하나 같이 자신의 발걸음을 대열의 발걸음에 맞추며 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행렬은 나란히 줄지어 움직이는 개미떼를 연상시켰다. 그 무리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디지털 전투복 주위에는 위압감이 깃들어 있 든든한 느낌을 준다.

  내가 민간인의 시선을 느 려 했던 건, 그 위압감을 얻기 위해 보낸 고단했던 시간들을, 그들의 심심한 사의 혹은 위로 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아닐까.


  역에 가까워졌을 무렵, 어떤 할머니께서 하신 "아이고, 고생 많아요." 이 한 마디가 아직까지 생생히 떠오른다. 그 짧은 한 마디는 내 앞뒤에 있던 몇 용사의, 아니라면 적어도 나 한 사람의 남은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중한 가치를 했다.

  내가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할 사명, 단언컨대 군생활 내내 아침저녁으로 '복무 신조'를 따라 외야 생기는  아니.


                               복무 신조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
                                (생략)


  대열을 따라 걷다 보니 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이름 모를 간이역에는 플랫폼만 덩그러니 존재할 뿐이다.

  옆에 철로가 없었더라면 플랫폼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그 장소에서 우리는 열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두툼한 의류대를 바닥에 고 앉았다. 인원 체크를 위해 인솔 간부가 교번(훈련병에게 부여하는 식별 번호)을 부르면 대답했다. 차례대로 도시락 보급받았다.


  도착한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열차가 들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봤던, 얼굴에 날카로운 각을 지닌 열차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입했다.

  저걸 타고 어느 세월에  상경할까 싶었으나, 스멀스멀 올라오 렘은 처럼 하기 힘든 여정을 즐기자고 부추 나를 창가 쪽 자리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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