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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Jul 11. 2016

월요병으로부터 해방된 백수

직장인 아닌 초보 꽃농부의 월요일은?

회사를 그만둔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가장 변한 것은 잠이 많은 게으른 농부의 역할을 확실히 책임지고 늦잠을 잔다는 것. 9시까지 푹 자고 일어난 후, 점심을 먹은 후 가벼운 낮잠은 꿀같다.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생계도 중요하지만 조금만 모아두고 몇달 쉬는 것은 참으로 할만한 일이구나 싶었다. 회사에 대한 거대한 충성심이 없어 커리어 포트폴리오가 무너져버렸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 스트받는니 인정하고 살기로 했다. 그래도 엉망진창인 내 커리어를 보고도 여전히 오퍼는 잘 들어오고있어 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고맙다.


유독 심했던 월요병

20대는 일을 열심히 했다. 학창 시절엔 새벽에 커피샵 오픈을 해야해 첫차를 타야했고, 점심 시간엔 식당에서 알바를 하느라 수업을 들으며 걸어가며 대충 아무거나 먹었드랬다. (뭐, 지금 생각하면 길거리에서 먹으면서 가는게 나름의 뉴요커같은 기분이긴하다). 엄청 부지런히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그 이후 직장생활에선 극심한 월요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일요일 개콘 하는시간이 되면 고구마를 100개는 삼킨 듯, 숨이 꽉 막히기 시작했고, 월요일은 크리에이티브한 일은 끄적대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5년 넘게 한결 같았다.


당연히 이직이야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월요병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일요일 뒤에 월요일인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은 기쁨이 몇배나 더 높아 프리미엄을 내고 사야할 판국이다. 


꽃농부는 어떤 월요일을 보낼 수 있을까?




월요일은 홈가드닝

이보다 평화로울 수 없다. 월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10시다. 어제 친구의 부탁으로 영어번역을 하는 탓에 새벽에 잠들었더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부지런한 농부 짝꿍인 이모는 이미 농장이란다. 


부시럭부시럭 일어나자마자 다육이들을 만나러 갔다. 


루비 넥크리스(넥클레이스), 왼쪽은 루비 목걸이라 불리우는 아이인데 다육이처럼 생각하고 물을 안줬더니 더운 날씨에 할머니 주름처럼 쪼글아들고 말았다. 잔뜩 물을 뿌려주었다. 


다육이는 물을 잘 먹지 않고, 햇빛을 좋아하지만 직사광선은 싫어하는듯 보인다. 바람도 잘 불어줘야한다. '키우기 쉽다' 는 것은 조금은 편견이었다. 너무 많이 만져도 안되지만, 원하는 걸 안들어주면 금새 반응이 오고 만다. 아무튼. 아침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나 구경하고 만져주는 일로 아침을 맞이했다. 여름이 온 것처럼 아주 더운 날씨이지만 여전히 월요일은 굉장히 평화롭다.




가장 더운 14:00

회사였다면 한참을 졸고 있을 시간이다. 


기분 좋은 소식이 있다.

작품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해서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꽤나 좋은 반응들을 받았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제법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부분 식물이 힐링을 가져다준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곤 하는 듯 싶다. 그러던 중, 몇몇 만들어놓은 아이들을 사진찍어 지원한 목동 야시장 플리마켓에 합격하게 되었다. 뭔가 늘 시작이 반이다란 마인드로 사는데 첫 플리마켓 참여라 그냥 기뻤다. 사람이 적더래도 기쁠 것 같다. 


뭐, '사람이 적더래도'라고 말했지만. 통은 컸다.


평소에도 손이 꽤나 큰 편이다. 밥을 먹을 때도 모자라면 기분이 나빠 큰 손이 작동하곤 한다. 평소 성격대로 오늘도 통크게 데려왔다. 집에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최상으로 신선한 녀석들을 데리고 나가고 싶어 농원에서 잔뜩 데려왔다.


평소에 예쁘다 생각했던 녀석들, 머리속에 담겨 있던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잔뜩 데려오고 말았다. 스투키는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주문을 주셔서 저정도면 충분히 주문은 따라잡을 수 있다.



다육이들을 만난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헷갈리는 것들이 많다. 헷갈리는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왔다. 또, 최근에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 온라인으로 준비하는 것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간 궁금했던 여러부분에 대한 해결책도 농원에서 얻어왔다. 농원에 가면 비닐하우스 안이 너무 더워 아프리카 못지 않은 정도의 더위이지만, 농부선배들이 잔뜩 계셔서 너무 재미있다. 



다육이는 여러번 말했든, 해와 바람이 중요한 녀석이다. 그래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오피스에서 키우기 적절치 않다. 그에 반해 선인장도 해와 바람이 필요하지만 다육이만큼은 아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녀석인만큼 생명력이 긴 편이다. 물론 뜨거운 사막에서 자라듯 해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래도 다육이보단 좀 더 키우기 쉬운편에 속한다.


요즘 내가 꽂힌 선인장은 비모란이라는 녀석인데 오른쪽에 알록달록 형형색색을 띄는 아주 화려한 선인장이다. 색감도 너무 예쁜데다가 키우기도 쉬우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스투키는 아주 많이 데려와주었다. 아주 싱싱하고 좋은 녀석들만 데려오느라 신중히 골랐다.

재밌는 건 이녀석 우리 나이대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는 녀석이라는데 친척동생이 "이게뭐야? 오이야?" 하는 순간 갑자기 녀석들이 오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이 아니야.


스투키는 음이온 방출이 산세베리아보다 3배 뛰어나다고 한다. (사실 스투키도 산세베리아과로 영어로는 산세베리아 스투키가 정확한 표현이긴하다). 그렇다고 산세베리아가 음이온이 적게 방출되는 녀석은 아니지만 뭔가 이미 건강해보이는 느낌이다. 우리가 흔히 산에서 상쾌하다 느끼는게 바로 이 음이온 때문이라고 하니 힐링의 필수 요소인 듯 하다. 



백수의 저녁 17:00

가장 더운시간에 활동을 했더니 더위에 지쳐 죽을뻔 했다. 그런데 부지런히 농원에 갔다.

너무 더웠던 날씨 때문에 땅이 빠싹 말라 꽃이 시들수 있어 농원에도 물을 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예뻤던 농원이 여름철이 되니 그냥 푸르기만 한 듯 보인다.

하물며 사람도 이렇게 더운데 꽃들이라고 안 덥겠나 싶었다.



알로에가 새끼를 품었다. 너무 작고 귀엽다. 이빨이 조금 무서워보일 수 있지만 너무 작아 아직은 귀엽다.



누군가 버리려 우리 농장에 준 선인장이 새끼를 품었다. 따로 똑 떼어내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전. 

녀석들 되게 보드랍게 생겼지만 선인장이라고 엄청 따갑다. 역시 생긴걸로만 누군가를 판단해선 안될 노릇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똑같다.




농장밖도 그렇게 예뻤던 꽃길이 푸른색으로 우거졌다. 봄에 비해선 좀 볼품없는 기분도 들지만 야생화가 재밌는 건 매주 다른 꽃들이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 그래서 그 재미도 제법 있다. 물론 야생화라해도 그냥 혼자 자라는게 아니고 매일같이 농원에 출근하는 이모가 다 다듬고 정리해주어 예쁘게 피고 있는 것들이다.



지금 이 시점엔 백일홍과 천인국(루드베키아), 그리고 금잔화가 한창이다.

촌시럽고 화려한 색감이 잔뜩 핀 이유는 아무래도 나같이 '여름은 너무 초록빛만 돌아' 라고 불만을 표현하는 이들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은 아닌가 싶다.



수국도 끝물이다. 이제 수국이 없네 할 때쯤이면 다시 나타나곤 한다.

아래는 수국의 4단계 모습 같다. (물론 모두 다른 녀석이다)


없네, 하는 순간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수국녀석들.



한송이는 활짝 피고 나머지는 아직 노란빛이다.

저렇게 작은 녀석들이 오므리고 있다가 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쑥 어느순간 자라나나 싶다.



그리고 반 이상은 핀 녀석. 아직 꽃분홍색과 노란빛이 함께 돌고 있어 파스텔톤이 예쁘다.



다 피고난 수국은 역시 아름답다. 아무것도 없이 이 수국 한다발만 꽂아놓아도 느낌이 새롭다.



월요일이 끝났다.

생각보다 농부의 삶도 평소 퇴근시간과 비슷하다. 그런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평소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월요일이었던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일을 하는 시간은 비슷하게 썼고, 땀을 넘치게 흘릴 정도로 힘들고 바쁜 하루였다. 그런데도 나는 자리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정도로 팔팔하다. 월요병이란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다르다. 바쁘게 사는 것은 한결 같고, 피곤한 것도 매한가지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마케팅이 다시 재밌어질 수 있도록 힐링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일상이 즐거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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