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캐나다를 왔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캐나다 친구가 그러는데..."
일단 "캐나다 친구"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 친구는 아마도 우리보다 조금 일찍 부모가 아니면 현 부모의 전 세대에 이민을 와서 정착을 했을 것이다. 캐나다라는 나라는 오래전부터 살았던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민자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캐나다 사람"이라는 정의는 살짝 까다롭다. 또한, 우리보단 일찍 영어권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당연 언어는 우리보단 좀 나을 것이다. 그리고 장담컨대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피부색이 하얀 사람일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흑인이나 인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그리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진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선 더 유별난 것 같다. 참 이상한 발상이다. 또한 여기서 "캐나다 친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인가? 아님 피부가 하얀 아이들을 통틀어서 정의하는 것일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캐나다에 살고 있다. 그걸로 보자면 친척이 땅을 사면 부럽듯이 당신이 피부가 하얀 친구가 있는 것을 내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이라는 미묘한 느낌이 든다. 피부가 하얀 친구를 가진 사람은 그러하지 않은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인가?라는 물음마저도 든다.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인가?
한국의 GDP순위는 현재 세계 10위이다. 많은 유럽의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거나, 개개인의 권리가 우리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을 가끔은 잊고 사는 것 같다. 또한 그러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피부색이 흰 사람들이다. 심지어 영어단어나 문법을 우리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근데 왜 그들은 우리에게 "캐나다 친구"라는 월등한 느낌으로 불리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 궁금증의 요인으로 문화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문화라는 것은 작은 상자와도 같다. 같은 지역에 살며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문화"라고 불리는 효과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대를 통해 답습하며 살아간다. 그 문화 안에는 오랜 세월을 통하면서 생겨난 많은 변화를 품고 있다. 그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퇴화되고 새로운 것은 만들어져 포함되어지기도 한다. 자연의 역사에서 보이는 "진화"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주 오래전 A라는 문화는 B라는 문화보다 조금 더 효과적이어서 지켜졌고, B는 서서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다른 C라는 문화도 생겨난다. 즉 우리의 역사가 경험한 피부가 하얀 유럽인들의 문화가 그 옛날은 우리보다는 앞서있었다. 그리고 영어라는 언어가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백인, 그리고 백인=월등함이라는 이상한 조합이 생겨났다.
이러한 조합을 받아들여 문화라는 것으로 계속해서 물려줄 것인지, 그와 달리 스스로가 그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깨우치고 변화된 문화를 물려줄 것이지는 오롯이 우리들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