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어김없이 안전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비행기는 천천히 런웨이로 향하고 있다. 창밖으로는 활주로의 반짝이는 노란 선이 보이고, 객실에는 묘한 정적이 감돈다. 승무원들이 일제히 안전벨트를 보여주고, 팔을 곧게 뻗어 비상구를 가리킨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짧은 연극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안내 중, 언제나 내 마음을 멈추게 하는 부분이 있다.
산소마스크.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아이를 돕기 전에 본인 것이 먼저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불편했다. 내 아이가 숨을 못 쉬고 있는데, 내 것부터 챙기라고? 그건 부모의 본능과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항공사의 논리는 간단했다. 내가 먼저 쓰러지면 누구도 도울 수 없다는 것. 한 사람의 무너짐은, 결국 모두의 무너짐으로 이어진다는 냉혹한 계산인 것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어느 엄마의 희생을 그린 글을 떠올려 보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언니, 요즘 너무 힘들어요. 애 둘에 시부모님까지… 제가 언제 쉬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눈가에는 피로가 깊게 번져 있었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그럼 너는 언제 너를 돌보니?”
그녀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건 사치죠.”
사치.
자기 돌봄이 사치라니.
언제부터 우리는 자신을 챙기는 걸 죄악처럼 여기게 된 걸까. 마치 나 자신을 조금 사랑하는 순간,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산소마스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을 먼저 살려야 한다. 그래야 결국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번아웃에 빠진 엄마는 아이에게 쉽게 화를 내고, 과로한 직장인은 동료에게 짜증을 낸다. 결국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지켜줄 수 없다.
비행기 안내방송은 사실 삶의 매뉴얼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건강한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먼저 쉴게.”
“이번엔 내 마음을 먼저 챙길게.”
“나부터 행복해질게.”
그건 이기심이 아니다.
그건 책임감이다.
내 산소마스크를 단단히 고쳐 쓰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
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