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운전을 하는 거야?

by TK

햇살이 좋았던 어느 주말, 대학생이 된 딸이 처음으로 우리 가족 나들이 운전을 맡겠다고 했다. 조수석에는 아내가, 나는 뒷자리에서 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운전대를 꽉 쥔 작은 손이 어쩐지 든든해 보였다.


처음 30분은 순조로웠다. 딸은 조심스럽지만 안정감 있게 차를 몰았고, 나는 속으로 '잘 크긴 컸구나' 하고 뿌듯해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돌아가지만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딸의 어깨가 조금씩 경직되는 게 보였다.


"어때? 괜찮아?" 아내가 딸에게 물었다."네, 아직은 괜찮아요." 딸이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긴장감이 배어있었다.


비가 좀 더 세게 내렸다.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길가에 차 세워." 아내의 목소리가 단호했다.나는 얼른 말했다. "조금만 더 가보자. 곧 그칠 것 같은데.""안 돼. 위험해." 아내는 이미 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결국 딸은 차를 세웠다.아내는 트렁크에서 미리 준비해 둔 새 와이퍼를 꺼내 직접 갈아 끼웠다. 빗속에서 뛰어다니며 와이퍼를 교체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분명 좋은 엄마인데... 뭔가 아쉬웠다.


"이제 엄마가 운전할게. 넌 조수석으로 가."아내가 젖은 손으로 딸의 어깨를 다독였다. 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몇 달 후, 이번엔 아들이 운전을 했다. 눈이 오는 겨울이었고, 길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와이퍼가 눈을 밀어내려 하지만 금세 다시 쌓였다. 앞유리가 하얗게 덮이기 시작했다.


"아들, 힘들면 말해." 조수석에 앉아있던 내가 말했다."아직은 괜찮아요, 아빠."


하지만 내 뒤에 앉아있던 아내는 이미 불안한 표정이었다."그냥 자기가 바꿔서 운전해. 위험해 보여."


나는 이번엔 다르게 말해보고 싶었다."조금만 더 해보자. 아들이 이런 상황도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경험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떡할 거야?"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차는 또 길가에 섰다. 이번에도 아내가 아들을 조수석으로 보내고 내게 밖으로 나가 눈을 치우라고 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눈을 털어내며 나는 생각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차로 돌아와서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당신, 우리가 계속 이렇게 아이들의 운전대를 대신 잡아주면, 아이들은 언제 진짜 운전을 배우겠어?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힘든 상황을 어떻게 혼자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겠어?"


아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잖아."


"삶이 원래 위험하지 않나? 우리가 평생 옆에 있어줄 수도 없고."


위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주변을 보면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


취업 준비는 아이가 하는데 면접 복장은 엄마가 골라주고, 대학 과제는 아이가 하는데 주제 선정은 아빠가 해주고, 연애는 아이가 하는데 상대방 집안 조사는 부모가 하고. 심지어 회사 면접에 부모가 따라가는 경우도 들어봤다.


운전대를 쥔 건 분명 아이인데, 정작 차를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멈춰야 할지 결정하는 건 부모다. 심지어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옮겨갈 때도 있다. 아이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이는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물론 부모 마음을 안다. 내 아이가 넘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고, 실패하는 걸 보고 싶지 않고, 아픈 걸 보고 싶지 않다. 비 오는 날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돼서 운전대를 뺏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운전을 못하게 된다. 평생 조수석에만 앉아있게 된다.


정말로 묻고 싶다. 지금 당신 아이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아이는 언제쯤 진짜 자기 인생의 운전석에 앉게 될까?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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