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더 뜨겁게 냉소해야 하는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을 용기에 대하여

by TK

언제부터 우리는 '냉소적'이라는 말을 패배의 다른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다. 세상이 바뀔 리 없다는 체념, 사람에 대한 불신, 그리고 "다 그런 거지 뭐"라며 씁쓸하게 삼키는 소주 한 잔 같은 것. 우리가 아는 냉소는 차갑고, 건조하며, 무기력하다.


하지만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Beyond Stoicism, 비욘드 스토이시즘』을 읽으며 나는 오래된 오해 하나를 풀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경 아테네의 거리에서 시작된 '냉소주의(Cynicism)'는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 어떤 철학보다 뜨거웠고, 세상의 거짓된 권위에 맞서는 날을 세운 칼날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뜨거운 냉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많은 '당위' 속에 산다. 스무 살엔 대학에 가야 하고, 서른 즈음엔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하며, 적당한 시기엔 결혼을 하고, 대출을 끼고라도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대한 각본. 우리는 이것이 마치 공기나 중력처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Nature)'라고 믿는다.


하지만 고대의 냉소주의자들은 단호하게 외친다."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든 '관습(Convention)'일 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햇빛과 공기, 그리고 자유를 주었지만, 사회는 그 위에 명품 로고와 직함, 연봉 테이블과 아파트 평수라는 보기 좋은 가식을 덮어씌웠다. 문제는 우리는 그 가식을 뜯어내면 큰일이 날 것처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공포. 그 공포가 우리를 '쇼윈도 속의 삶'으로 몰아넣는다.


내면은 텅 비어 가는데, 인스타그램 속의 나는 화려해야 한다. 관계는 지쳐 가는데, 인맥 관리는 멈출 수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도 전에, 세상이 주입한 욕망을 내 것인 양 착각하며 달린다. 냉소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거대한 연극 무대 위에서 원하지 않는 배역을 연기하느라 진이 빠진 광대와 다를 바 없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 알렉산더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던 디오게네스가 있다. "소원이 무엇인가?"라는 왕의 질문에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시오"라고 답했던 그 장면은, 단순히 괴짜의 기행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관의 완성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신이 가진 제국의 권력과 재산보다, 지금 내 피부에 닿는 이 따스한 햇볕 한 줌이 더 가치 있다"라고.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성공'이라는 허상보다, 내 생명과 본성이 누리는 '자유'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외침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렉산더는 누구인가? 그것은 대기업의 간판일 수도, 타인의 인정일 수도, 통장의 잔고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들 앞에서 너무 쉽게 작아지고, 너무 자주 비굴해진다. 내 영혼의 햇빛을 가리고 서 있는 거대한 그림자들에게 "비켜서라"라고 말할 용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오해하지는 말자. 산속으로 도망치거나, 직장을 때려치우고 거리에 나앉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냉소주의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직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의 인파 속에서, 혹은 쏟아지는 업무와 회식 자리에서,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아주 '삐딱하게' 질문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내 삶을 위해 필요한가, 아니면 남들에게 전시하기 위해 필요한가?"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이 길이, 과연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길인가?"


우리는 스토아학파에게서 견디는 법을 배운다. 힘든 파도가 칠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그 파도가 가짜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꿰뚫어 보는 냉소주의자의 눈이 필요하다.


"견디지 마라. 만약 그것이 가짜라면."


진정한 냉소는 세상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씌운 껍데기를 벗겨내고 우리 본질의 알맹이만 남기는 과정이다. 가식적인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나다움'을 채우는 일이다.


그러니 청춘들이여, 조금 더 냉소적이어도 좋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지에 엑스(X) 표를 칠 용기를 갖자.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당신만의 햇빛 아래 서라. 그 삐딱한 질문들이 당신을 비로소 숨 쉬게 할 것이다.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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