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 밖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거실 창문을 열고 흩날리는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먼 산을 보듯 눈을 바라보다가 베란다 철봉에 떨어져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눈을 눈에 담았다.
며칠 동안 아침부터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잠시나마 명상을 한 듯 마음이 고요해졌다.
"카톡!"
이른 아침, 형제 톡방에서 긴급 요청이 오고 갔다.
“아버지 안방 화장실에서 넘어지셨데.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는 사람?”
치매가 있으신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시다가 낙상을 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넘어진 후 흉부가 몹시 아프셔서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단다.
병원에 가기 위해 친정집으로 향했다.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부축하며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1층 문 앞, 바로 앞에 놓인 차까지 걸어가는데 5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내 보폭의 속도라면 1분도 안 걸렸을 거리를.
"딱, 딱, 딱, 딱"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메트로놈을 틀어놓은 듯이.
4cm 정도 전진했을까?
차에 올라타시기 위해 발을 뻗어 보조석 차 발판에 발이 닿기까지, 앞 의자헤드를 잡고 엉덩이를 차 시트에 대기까지 또 3~4분여의 시간이 지났다. 아버지에게만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돌잡이 아이가 간신히 한발 한발 조심스레 발을 옮기듯.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까지 가는데 아버지는 종종걸음으로 힘겹게 진료실까지 걸어가셨다. 대기석에 앉아 순번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모자를 벗자, 병원에서도 눈이 내렸다.
하얗고 작은 눈이 소리 없이 천천히 내렸다. 외투를 벗을 때도,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쓸 때도 소리 없이 흩날렸다. 대리석 바닥 위에 안착한 녀석들은 다행히 눈에 띄지도, 녹아 없어지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발자국 때문에 검정물이 들거나 바닥을 질척이게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외투 깃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사라졌다. 늙은 세포가 죽어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각질이었다.
아버지 진료 차례가 되자, 나무늘보 같은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의사를 환자 대기석으로 인도하는데 일조했고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엄마와 나, 그리고 간호사가 붙어 아버지의 탈의를 도왔다. 혼자서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버거우셨던 아버지. 진료시간은 3분 남짓,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것도 30분 안에 모두 끝났다. 진료와 검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다시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아버지의 느린 발걸음이 엄마의 분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아... 진 빠져.”
느림은 곧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아침에 마주했던 느림의 미학은 거동이 불편한 배우자이자 치매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한 가정의 가장에게 덧입혀지자 욕받이가 되었다. 기능적 퇴행만으로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고집과 아집으로 살았던 당신이 엄마에게 보냈던 수많은 욕설과 폭행이 노년의 연금처럼 돌아온 것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애처롭고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지나 온 세월 속에 악다구니로 버텼던 몸속 근육들과 서사들이 모녀의 한숨과 뒤엉켜 차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아직 이별할 준비를 못한 채 옷 깃을 여미게 하던 3월.
아버지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미안하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없이 노환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4월, 엄마와 점심을 먹던 날.
엄마는 내게 고백하듯 말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
50년간 술과 폭력 그리고 폭언을 일삼던 배우자와 반백 년을 살아온 당신에게 나온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몹시 생경하게 들렸다.
“신기하고 놀랍다.”
“그러게 내가 이렇게 그리워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너무 미안하고 후회가 돼.
죽기 일주일 전에 내 방으로 오더니 침대에 걸터앉는 거야.
“나 여기서 자도 돼?” 물었는데
“왜 여기서 자! 당신 방에 가서 자.” 냉정하게 말했어.
(흐느끼며) 너무 미안해. 불쌍한 사람... 그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어. “
그리고 네 아버지가 화장실 쓰고 나면 그렇게 각질이 화장실에 떨어져서
훔치고 나오라고 타박했는데... 요 며칠 전 화장실에서 각질을 봤어.
내 것도 있었던 거지. 이제야 알아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