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숨만큼만

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마음회복 에세이


밤 10시 46분.
10시 반에 귀가하기로 한 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슬슬 마음을 휘감기 시작했죠.

딸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어디야?”
“놀이터.”
“뭐 해? 안 들어오고. 10시 반 넘었어.”
“친구랑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
“11시까지는 들어와.”

대답 없이 딸은 톡에서 사라졌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았죠.
귀가시간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괘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며칠 전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부 포기 선언을 했던 딸이었기에,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고 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습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시계를 보았습니다.
새벽 12시 13분.

심장이 뒤꿈치에도 달린 듯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달려가 딸을 보는 순간,

쌓인 감정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제정신이야? 엄마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엄마가 뭐라 그랬어? 11시까지 들어오라고 했지?
고2 정도면 시간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 아냐?”


딸은 도리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친구 부모님들은 새벽 1시도 괜찮고 2시도 괜찮대!
왜 우리 집만 이렇게 귀가 시간이 빠른 건데?!”

반성할 줄 모르는 모습, 도리어 억울하다는 듯 따져 묻는

딸의 모습에 결국 화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그럼 그 시간까지 놀다 들어와도 괜찮은 집으로 가.
이 참에 부모 자식 인연 끊으면 되겠네.”

딸은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우리 엄마가 부모 자식 인연 끊자고 하신다.
오늘 너희 집에 가서 자도 돼?”

순식간에 손이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딸의 등을 한 번 세차게 때렸죠.

딸이 멀쩡해 보이자 근력 운동했던 모든 힘을 힘껏 때렸습니다.

제 손이 얼얼할 만큼 세차게 때렸죠.

손이 벌겋게 달아오르더군요.

딸은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를 지르듯 말했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폭력을 써!!!”

“엄마가 맨날 때려? 네가 화나게 하니까 그런 거지!
약속만 잘 지켰어 봐, 엄마가 이렇게까지 했겠어?”


싸움은 서로의 가슴에 칼날을 품은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밤, 46년 만에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저는 밤새 눈물로 뒤척였죠.
그 후, 우리는 3주 동안 아침인사는 물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지지보다는 지시가 많았던 유년 시절을

반복하기 싫었던 저는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딸이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웃으며

‘그랬구나’ 했던 날들도 많았죠.

갈등과 직면하기 싫었으니까요.

분노가 치밀어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철들겠지…’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속은 타 들어가는데 겉으론 괜찮은 척,

이해된 척하는 것은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고

엔진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 사건으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감정과 이성의 불균형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화를 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함께 말이죠.

엔진에서 굉음과 함께 연기가 나고 있는데

회피하거나 덮어두며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어

언젠가는 안전해질 거라 착각한 거죠.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를 공감하는 혹은 공감하는 척하는 일은

자신을 기만하고 행위이며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는데

상대를 품거나 이해한다?

어불성설이죠. 관계를 안전하게 맺는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가 안전한지 먼저 알아차리고

돌봐 주어야 가능해집니다.

괜찮은 척하며 숨을 참기만 했던 저는

정작 숨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한 권의 책이 떠오릅니다.

제주 해녀들의 삶을 관찰하며 쓴 고희영 작가의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제주도 해녀는 물질 실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 군으로 계급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10m~20m 잠수할 수 있다면 상군, 5m~9m 정도

잠수할 수 있다면 중군,

3~5m 정도 잠수할 수 있다면 하 군이라고 합니다.

1m~3m 잠수할 수 있는 해녀는

표현이 직설적으로 들립니다만, ‘똥군’입니다.


그야말로 해녀는 숨에 죽고 숨에 삽니다.

숨 조절을 잘해야 먹고살죠.

숨을 잘 참는 상군 해녀들은

숨을 잘 참는 만큼 숨을 언제

쉬어야 하는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선배 해녀들은 물질을 시작하는

신참 해녀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 보면 주먹 2개만 한 크기의

전복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자신의 숨 길이를 망각하고 욕망에 이끌려

작업하다 보면 순식간에 저승길에 오르게 된다고 하더군요.

각자마다 소화할 수 있는 숨의 길이가 있는데

욕심을 낸 결과 죠.






해녀들에게 숨 조절이 중요하듯 대화를 할 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를 조정하려 들거나 설득하려 할 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강요와 비난으로 변질되곤 하죠.

이때 거친 숨을 몰아 쉬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

과호흡을 경험하기도 하죠.

그래서 대화에서도 숨 조절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관계 안에서 언제 숨이 딸리는지,

힘이 드는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나는 지금 안전한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죠.


해녀들은 숨을 참기가 힘들 때

물 위로 올라와 숨비소리를 내며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물질을 합니다.

대화가 힘들어질 때 심호흡을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결이라고 봅니다.

(*숨비소리: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



관계 대화법을 안내하는 저에게는

상군 해녀의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라는 당부의 말이

너의 숨이 지금 안전한지 먼저 알아차려 보렴.’으로 들립니다.



대화가 잘 안 되는 순간,

당신의 숨을 먼저 돌봐 주세요.
당신의 숨이 안전할 때, 비로소 관계도 안전해집니다.



20251014_173455.jpg 해녀의 숨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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