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지금 눈에 들어오는
동그라미 모양을 말씀해 보시겠어요?”
“시계요. 컵 뚜껑이요.
난방기 버튼도 동그라미네요.”
“그럼 세모는요?”
“삼각대, 강의장 모서리요.”
“이제 네모를 찾아볼까요?”
“책상, 모니터, 문, 바구니요.”
소매틱 비폭력대화 수업에서
‘관찰’ 훈련을 할 때 들었던 질문들입니다.
선생님은 덧붙여 물으셨죠.
“동그라미를 찾는 동안,
혹시 네모가 눈에 들어오신 분 계신가요?” 혹은
“네모를 찾으며 세모를 보신 분은 요?”
“아니요… 네모만 보이던데요?”
귀한 깨우침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현실이 정말 다르게 해석되죠.
네모의 눈으로 보면,
세모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세모조차
네모로 해석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대부분의 현실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해석한 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 특히 눈에 잘 들어오는 건
‘정리정돈’, ‘청결’, ‘위생’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소파 위에 놓인 빈 컵이 먼저 보이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가 눈에 거슬립니다.
딸과 함께 청소를 하고 나면 먼저 보이는 것은
닦이지 않은 바닥 자국이고,
신경이 쓰이는 건 아직 빨지 않은
물걸레 청소기 패드입니다.
어느 날인가 딸이 그러더군요.
“엄마는 내가 물걸레 통을
깨끗이 씻어서 말려 놓은 것은 안 보여?”
‘되어 있는 것’보다 ‘안 되어 있는 것’에
꽂혀 있는 시선,
‘신랑이 딸 밥을 해 먹인 노고’보다
‘설거지를 안 한 싱크대의 정리정돈 상태’만 보게 되는 시선.
꽂혀 있는 시선의 필터 덕분(?)입니다.
독서모임 회원 중 H 씨는
남편의 유니폼을 곧게 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곧게 다린 유니폼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그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아.”
그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 줄로 곧게 다린 유니폼을 보며 뿌듯해하던
그녀이기에 곧 내면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죠.
“이게 왜 안 중요해?
나는 중요하단 말이야.
당신에게 중요한 건 도대체 뭐야?”
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다를 수 있죠.
살아온 환경, 경험, 가치관이 다르면
‘중요함’의 목록도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보편적인 세상의 진리처럼 여기며,
상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곤 합니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되죠.
그녀는 남편에게 “그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아.”
라는 말은 듣는 순간,
“너는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신경 쓰고 있어.”라는
비난처럼 들렸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상대는 ‘나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는
‘상대 돌봄’의 욕구를 표현한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아내는 ‘나는 당신이 매장에서
음식을 내놓을 때 유니폼도 청결을 유지하면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라는
지지, 지원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바람은 읽히지 않고
‘중요도’를 두고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중요도는
각자만의 기준이 있기에
일반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일반화의 잣대로
상대에게 들이대곤 합니다.
나만의 잣대에서 어긋나면 잘못된
인간으로 폄하하기도 하죠.
이때 상대는 방어하거나 반박하는 언어로 맞섭니다.
뇌는 이런 언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곧바로 싸울 준비를 하는 거죠.
시인 로저 맥거프의 시처럼 말입니다.
나는 조용조용 설명한다.
당신은 고함치는 말로 듣는다.
당신은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나는 오래된 상처가 들추어짐을 느낀다.
당신은 양면을 본다.
나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당신을 본다.
나는 달래 주려고 한다.
당신은 새로운 이기심을 느낀다.
나는 비둘기다.
당신은 매로 보인다.
당신은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나는 가시를 느낀다.
우리는 왜 이토록 오해하며 살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웃사촌 J 씨가
주차장 조명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
“다른 곳보다 더 어두워?”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J 씨가 의견을 덧붙였입니다.
“아니 여긴 엘리베이터 조명도 어둡고 칙칙하네.”라고 하더군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기 요. 선글라스 좀 벗어봐요.”
“아!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구나.”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관점의
선글라스를 쓰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죠.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뇌는 과거 경험에 준해 예측하고, 패턴을 해석하려 합니다.
낯선 현실을 익숙한 프레임에 맞춰 순식간에
자기만의 필터로 의미부여를 하죠.
그 프레임은 시간과 함께 견고해지고
각자의 삶에 ‘중요한 것’, ‘당연한 것’, ‘상식적인 것’
등의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유동적으로 정의되는 표현이니까요.
관계안에서 갈등이 벌어진다면
자신의 관점을 인식해보세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해석의 선글라스는 뭐지?”
‘나는 지금 이렇게 해석하고 있구나.’ 인식할 때,
대화는 조금 덜 단정적이고 덜 공격적으로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