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어머니, 아시죠?
00 이가 안 좋은 아이들이랑 어울리는 거.
수업 태도 안 좋은 친구들이랑 자주 어울리다 보니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걱정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스승에 날, 초등학교에 찾아가서
아이들을 혼냈다는 얘기 들으셨죠?”
“우리 딸이 아이들을 혼냈다고요?
금시초문인데요.”
“학교에서도 단속하겠지만 가정에서도
신경을 좀 써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중학교 학부모 상담이 있던 날,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을 혼냈다는 게 무슨 의미죠?”
“선생님이 직접 보셨어요?”
머릿속에서 수많은 질문들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질문을 퍼부으며 취조(?)하듯 묻고 싶었지만
‘괜히 반문했다가 아이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두려운 마음이 순식간에 모든 의구심을 잠재웠습니다.
“아…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알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신경 쓰겠습니다.”
찹찹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학원 간 딸이 집에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죠.
도착하자마자, 딸의 방으로 들어가
레퍼처럼 질문을 쏟아부었습니다.
“너, 스승의 날 학교 갔었어?”
“어.”
“너 초등학생 아이들 혼 내주러 간 거야?”
“누가 그래?”
“엄마는 다 알아.
친구들 이랑 가서 혼내 준거야?”
“선생님이 그래? 엄마,
엄마는 지금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전제하에 말하네.
그런 엄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은데."
그 말을 하면서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더군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날 믿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차 싶었습니다.
‘내가 편향된 시선으로
질문을 하고 있었구나.’
알아차렸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들과 함께
졸업한 초등학교에 방문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영어를 정말 잘 가르쳐 주셨구나.’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어 스승에 날 영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 거였다고 하더군요.
초등학생 아이들과 마주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학년 층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복도에 있던
학생들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가던 초등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키 큰 중학생들이 초등학생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을 보시고 괴롭히러 왔다고 생각하시고는
00 중학교 교무실에 전화를 해서
“아이들 단속 좀 부탁드린다.
학생들이 초등학생을 괴롭히는 것 같다.”라고
연락을 했다는 겁니다.
그 소식을 들은 중학교 선도부에서는
딸과 친구들을 불러 반성문을 쓰게 했다 더군요.
그전에 중학생들이 옆 학교인 초등학교로 넘어와
저학년 학생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종종 보신 걸까요?
우리는 저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뇌는 패턴을 일반화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과거 패턴을 통해 예측한 해석은 빠른 해결과
공동체의 질서와 규칙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니까요.
하지만 빠르게 패턴을 읽는 우리는
고려해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한번 볼까요?
무엇이 보이시나요?
또렷한 흰 선은 없지만
흰색 삼각형이 보이시나요?
있는 그대로 본다면 흰색 삼각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가 빠진 원 모양 3개와 꺾인 선 3개만이 인식되어야 하죠.
하지만 순식간에 주변의 조건들과 결합해
눈앞에 흰색 삼각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외곽선이 없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대화를 할 때도 없지만 있는 듯 바라보는
흰색 삼각형은 수시로 출몰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경험 속에 기억된 이미지와
가치들이 어우러져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뇌는 시각 피질에 의해 기능적으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표상화된 이미지를 덧입혀서
정보를 처리합니다. 아주 능동적으로 추론을 시작하죠.
'키 큰 중학생들이 초등학교 항생들 주변에 서 있다.'는 사실을
'괴롭히고 있다.'로 추론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세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볼까요?
S 씨는 추석연휴에 시댁에 갔다가 시어머님이
남편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지난달 수술비도 네가 내줬는데
추석용돈까지 주고 미안해서 어쩌니."
S 씨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얼마 안 들었어."
아내는 금액이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신랑은 무엇을 추론했던 걸까요?
'여유 돈도 없으면서 용돈에 병원비까지 냈다고 뭐라 할지 몰라.'라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추론하지 않았을까요?
0.001초도 안돼서 바로 답할 만큼.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 있는 그대로 듣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수련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수많은 데이터들이
머릿속에 남아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볼 때
수시로 떠오르기 때문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 관점대로 해석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니 내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늘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해야만 한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구구단처럼 외우시 길 바라며 표현해 봅니다.
‘인간의 뇌는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