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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의 나무 Mar 06. 2024

Ep.15 오후 7시 30분의 전화

그 땐 기적인지 몰랐다

저녁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발신자는 아흔한 살의 노인, 30년 지기 내 단짝친구. 휴대폰에는 '내사랑망구'라고 저장돼 있다. 예의 없다고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망구(望九)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나이가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여든한 살을 이르는 말"이다. 할머니한테도 이렇게 설명하며 까불다가 꿀밤을 맞은 게 10여 년 전 일인데, 할머니는 어느새 구순이 되셨다. 내가 무서운 꿈을 꾸면 나를 무릎에 눕혀놓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며 토닥여준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내게 마음껏 응석을 부린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게 전화 한 통으로 주문을 하시고, 머리가 길어 파마가 풀렸거나 흰머리가 올라오면 남동생이나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미용실에 가신다. 그 덕분에 요양원에서 다른 할머니들의 파마 요구가 높아지기까지 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어도 내게 전화를 거는 일은 할머니 하루에 유일한 낙이자 의식이 되었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3년 넘게 지내며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유일한 방법은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인'뿐. 그중 가장 오랜 시간을 붙어 지낸 내게 할머니는 전화를 하신다. 촌각을 다투며 기사를 마감하다가도, 취재원을 만나다가도, 데이트를 하다가도 할머니 전화가 오면 나는 잠시 일시정지를 누른다. 얼른 받지 않으면 할머니가 불안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해외 장기 출장 결정이 난 후, 가장 걱정되는 건 할머니와의 통화였다. 부모님이나 동생, 친구들과는 메신저나 이메일로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지만 할머니는 사정이 달랐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볼 때 두 손가락으로 줌을 할 줄 아시는 신세대 강여사님이지만, 카카오톡 통화를 받거나 걸 줄은 모르신다. 평생 성경을 보는 일로 아침을 시작하던 할머니가 글자 쓰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계시니, 카카오톡 사용법을 새로 배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019.03.28. 오후 1시 53분


휴대폰 청구서를 열어보는 일은 이메일을 정리하는 작업 중 짧은 축에 속하지만 꽤 먹먹한 일이다. 늘 집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던 할머니가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의 발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서다. 물론 '우리집'이라고 저장한 번호 대신 '내사랑망구'라는 이름과 사진이 함께 뜨는 전화를 받는 일은 즐겁다.


한 달에 60여분 정도의 전화를 할머니는 건다. 그 전화는 대부분 내게 거는 전화다. 저녁 7시 20~30분 사이에 거의 매일 전화가 걸려온다. 운동이라도 하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야단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7시 15분이 지나면 먼저 걸기도 한다.


할머니가 장애인이 되셨다. 자유가 사라진 걸 할머니는 몹시 힘들어하셨다. 요양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나오겠다고 울고 불며 성화를 부리시던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지낸 지 만 3년이 지나 4년째에 접어들자 잠잠해지셨다. 오래도록 몸이 아팠던 작은 고모가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고 싶어 하지 말고 거기서 잘 버텨야 오래 사는데..." 하셨다. 마치 당신이 그곳에서 깨달은 진리를 설파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할머니한테 컬러링북과 색연필 세트를 사다 드린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장에 가는 즐거움을 빼앗긴 할머니께 소일거리라도 있어야 적적함을 달랠 것 아닌가. 수술 직후엔 글씨를 다 까먹었던 할머니는 이젠 독해력을 회복하셔서 성경을 읽는 데엔 큰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요양원 내에서 형성된 작은 사회에도 곧잘 적응하셔서, 나와 부모님, 친척들이 할머니께 쥐어드린 용돈으로 거기 직원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원하는 과자나 음식, 롤케이크 같은 걸 사다 드시곤 한다.


그곳에서도 할머니에게 돈이 중요하다. 나는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곧장 달려간 그날, 큰 후회를 했었다. 그날 아침에 할머니께 드리려고 5만 원권 지폐를 올려놨는데, 허둥지둥 출근을 하느라 할머니께 용돈을 전달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그날 사야 할 게 있다고 하셨다. 그걸 드렸더라면 할머니가 시장에 나가셨을 테고 하필 집에서 아빠와 부딪히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그 5만 원이 무슨 소용인가 하고 후회를 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후회는 무용한 것이고 5만 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용돈을 드려도 할머니는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이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청구서를 보면, 단 돈 몇 만 원으로 할머니가 원하는 때에 내게 전화를 할 수 있고 내 목소리를 듣고 안정감을 느끼며 잠이 든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께서 매일 빠짐없이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것은 사실 기적이었다. 그 연세에 휴대폰을 사용할 줄 아셨고, 기억력이 흐려지지 않았으며, 집이 아닌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할머니께 낙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 소소한 기적은 할머니와 내 하루에 선물이었다.


내가 출장 가게 되는 국가마다 컬러링북을 사드렸는데 할머니는 유독 마지막에 사드린 독일과 네덜란드를 자주 언급하셨다.



2019년에 쓴 일기를 꺼내 봅니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상자에서 할머니가 색칠한 컬러링북을 꺼내 봅니다. 낯선 공간에서 스케치에 색을 입히면서 채웠을 할머니의 시간들이 그려집니다. 자꾸 낱장으로 뜯어지는 책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삐뚤빼뚤 숫자를 써 놓은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웃으며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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