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밀어부치지 않아야 하는 시기
한동안 쓰는 일을 멈췄다. 쓰는 일의 연료인 새벽에 일어날 힘은 생겼는데, 어쩐 일인지 글로 토해낼 의지가 차오르지 않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내면에 가둬두고 싶었다. 출판 요청을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죄책감 비슷한 것이었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그리하여 고이 간직하고 싶은 할머니를 향한 슬픔과 그리움, 사랑의 마음을 '출판'이라는 상업적 행위와 나란히 놓고서도 과연 나는 이 추모의식을 고귀하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뒤따랐다.
거기에 사유가 멈췄다. 평상시라면 생각을 이어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하루 만보씩 고된 걸음을 내딛는 것보다 사유의 걸음 한발짝 나가는 것이 힘에 겨웠다. 그렇게, 잠시만 쉬려고 찍은 쉼표가 마침표가 되는가 싶었다.
더디지만, 사유는 조금씩 퍼져나갔다. 물 위에 한 방울 톡 떨어뜨린 잉크가 처언천히 퍼져나가는 시간처럼 구름에 달 가듯, 지렁이가 허리를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 다시 윗몸을 밀어내며 앞으로 쭉 뻗듯, 내 심장은 온 힘을 다해 1마이크로미터를 전진하고 있었다.
한 번에 열 가지를 해내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두었다. 역량의 크기가 쪼그라든 탓에 그럴 힘이 없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밀어부치지 않아야 하는 시기라는 걸 직감했다. 위장에 가득찬 음식물이 부대끼며 위산을 기다리듯, 포화상태인 내 머리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했다. 풍선에 미세하게 난 구멍을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아주 더디게 태스킹이 완료되고 있었다. 우선순위가 나와 내 마음이 되면 좋으련만, 현실에선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해서, 그 바람구멍을 넓혀주지 못하고 머릿속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늘어만 갔다. 입장객은 줄지 않는데 줄은 자꾸만 길어지는 맛집처럼 할일 목록은 쌓여만 갔다.
이 시기를 버틴 건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누구에게 말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에너지를 한 데 모아 내게만 집중했다. 마치 할머니가 여전히 살아계시고 주말이면 할머니를 보러갈 거라고 계획을 세우던 여느 평일처럼, 주중엔 내 내면이 뭐라고 하는지에 귀를 기울였다. 의도한 게 아니라 저절로 그리 되었다.
그건 효과가 있었다. 주말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 순간의 현실 그 자체를 인식했다. 우리 할머니 눈빛이 살아있네. 할머니 눈썹을 짝짝이로 그려줬구나, 더 잘 그려드릴 걸. 귀가 크긴 크네. 귓불이 넓으신 게 장수하실 상이었네. 복코가 얼굴에 조화를 만들어주네.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거라는 걸 할머니는 아셨을까. 어쩜 이리도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실까.
다른 이들의 상실경험이 내게 등불이 되어준 시기가 있다. 마음이 무너져내려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때에는 아무 말도, 글도 들리지 않고 읽히지 않았다. 그저 상실한 이들의 아픔만이 눈과 귀에 어른거렸다.
이제, 할머니의 고통스런 마지막 모습의 잔상이 흐려진 만큼 내 상실감도 조금은 옅어지고 있다.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은 이렇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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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슬픔의 기록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제 글을 기다려 주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난 글에서 "슬픔이라는 노래에 악보가 있다면 지금 제 노래는 긴 쉼표가 이어지는 구간 같다"고 말씀드렸지요. 어제까지도 참 힘들었어요.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성격이지만, 한동안 스스로를 밀어부치지 않아야 하는 시기였거든요. 그래도 결코 마침표가 되진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글의 첫 번째 목적이 할머니를 추모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목적은 탈상(脫喪)이거든요.
슬픔을 느끼고 또 기록하며 깨닫는 게 있어요. 예부터 선조들이 어버이 삼년상을 치르고, 불교에서 49재를 지내는 데에는 보편적이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에요. 다만 그 일이 내 일이 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할 뿐인 거죠. 제가 상실을 겪고 보니 그래도 100일은 슬픔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어요. 며칠 전 회사에서 일하다 머리를 식히러 바깥에 나가는데 문득 제가 웃으며 할머니와 추억 한 자락을 회상하고 있더라고요. 날짜를 세어보니 꼭 101일째였어요.
그렇다고 아주 괜찮아지진 않더라고요. 마치 심하게 앓고 난 다음날 잠에서 깨보니 감기가 말끔히 나은 것처럼 되진 않지만 쪼그라들었던 에너지 게이지가 조금은 높아진 기분이랄까.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교훈들2, 장례유감2 처럼 예고한 글들은 늦더라도 쓸 계획이에요. 이 공간에 글을 쓰며 바라는 건 간단해요. 제 머리와 가슴에 담긴 할머니의 모습을 빠짐없이 기록해 내 스승이자 친구인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 그리고 상실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이나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미래의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해 어루만짐을 느끼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