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페이스
나는 유리 같은 사람이다
5분만 같이 있으면 고향이며 직업이며 가족관계까지 대충은 알게 된다.
나는 또 불같은 사람이다
흥분을 잘해서 버럭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 '포커페이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화나도 화난 줄 모르게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다.
유리 같고 불 같은 성격으로 나는 한 조직의 창립부터 확장까지 20년을 일했다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돌봄으로 20년을 살아왔는지 감개무량할 뿐이다)
그러다 실무 책임자 역할에서 물러나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후임자는 내가 평소 존경하고 따르던 대선배였고 어렵게 읍소하다시피 모셔온 분이었다.
하지만 후임자는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후임자의 업무처리 방식이나 방향성에 대해 자주 지적했고
나와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은근히 후임자가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한때는 존경하고 따르던 분이었는데....
관계도 예전 같이 않아졌고 속 깊은 얘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은 후임자의 의견보다 나의 의견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사회 카톡방을 나와버렸다
이사회 참여 하지 않은지 어느새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20년간 쌓아온 나의 이미지가 후임자 때문에 다 망가졌다고 후임자 원망을 많이 했다.
사임을 해야 하나, 휴직을 해야 하나 고민은 고민을 불러왔다.
5개월은 더딘 듯, 빠른 듯 흘러 더 이상은 피하지 못할 막다른 곳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오늘 이사님들 한분 한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비난받을까 두려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섞여 한 분 한 분, 통화 버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으이그 지랄 맞은 성격. 제발 성격 좀 죽여"
"하하하 12월부터는 보는 거예요?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ㅎㅎㅎ 알았어요"
"이제 포커페이스 할 때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또 그러면 욕할 거야~"
울컥했다. 나 그동안 사랑받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