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도서관에서 삼순이 계단을 지나서 남산을 올라가기 시작하면 남산타워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내 몸을 이끌고 중력을 이겨가면서 점점 더 고지로 올라가는 그 여정은 굉장히 힘들다. 중력을 느끼는 것은 내 몸무게에 비례하는 것인지 점점 더 고지로 올라갈수록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안쓰러운 다리에는 알이 박히고 내 작은 발은 굳은살이 베겨간다. 내 발은 내 몸을 지탱하기에는 더없이 작아보였다.
몸을 이렇게 이끌고 다니는 것이 힘들 정도라니. 그것 자체로도 꽤나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영혼인가, 몸인인가 하는 실존적 문제를 생각하다가 이 몸이 바스라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부터 생각이 흘러간다. 나는 고통속에서 한발을 내딛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단도 끝이 보인다. 이정도의 산행이 이렇게나 힘들다니 확실히 운동은 되겠다 싶었다.
내가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 건 어쩔 수 없는 내 몸무게 때문이었다. 작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거의 2년만에 몸무게를 재게 됐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2년동안 자그마치 15키로가 넘게 살이 찐 것을 2년만에 확인했다.
내가 내 몸을 보는 것보다 체중계에 찍혀있는 몸무게를 보면서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 몸무게라니?! 내 몸이 불쌍하고 이 큰 몸을 끌고 다니는 내 발과 다리가 불쌍하고 내 인생이 불쌍해지는 절망감에 드는 몸무게였다.
이 몸무게를 보고 나는 내가 상당한 비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정하려고 해도 이건 내 몸무게고 이건 내 몸이었다. 나는 살을 빼야만 한다. 살을 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연애고 결혼이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 머릿속의 상상마저도 이루기 힘들 몸무게다. 뭐 쇼핑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도. 거울을 보는 즐거움은 말할것도 없다.
생각을 해봤다. 어떻게 살을 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지금 이대로 똑같이 산다면 살을 결코 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나는 똑같은 상태에 머물 것이다. 조금씩 변화를 줘야만 한다. 특히 최근에 전동 킥보드를 타면서 걷는 것을 더 줄여버린 것도 문제였다. 출퇴근할 때라도 걸어야하는데 킥보드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스스로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는 무조건 남산을 걷기로 했다.
남산을 걷는다. 남산을 걷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날씨가 좋아야하고 집 밖으로 나를 내몰만한 의지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넷플릭스, 티빙, 유튜브를 뒤로 한채 옷을 입고 머리를 묶고 몸을 내몰아서 걷기 시작한다. 중력을 이겨내지 않아도 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강한 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 몸무게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과연 내 다이어트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몸무게를 잰다는 변화, 몸을 일으켜 남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