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3] 가을 이야기

추석 그 쓸쓸함에 대하여

by 짜근별

2004.09.30


지금쯤이면

대학정문에서 대학본부에 이르는 길가에 노란 은행잎이 정말 멋들어지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만추의 아늑함이 깊어갈수록 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길은

온통 노란잎의 바다를 이루어갈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노란빛이 얼마나 눈물시리도록 아름다운지를...

가을 정취가 한가득 고인 그 길을 새벽안개를 걷어내며 터벅터벅 걸었다.

가을의 그 아낌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삶의 고뇌를 온몸으로 받아안으며 밀려밀려 무언가를 잡기 위해 허우적 거렸다.

대학은 그렇게 대학생에게 잔인한 공간이되기도 한다.


중도 옆

무엇인가를 잡기위해 안간 힘을 쓰던 그 무수한 가을 밤 한가운데서

지친 심신을 달디단 자판기 커피 한잔에 녹여내며 만지작거리던 단풍나무의 그 단풍잎...

정갈한 무언가를 맨 처음 건들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었을까?

난 그 중 가장 이뻐보이는 가지를 아무런 죄책감없이 꺾어서

두툼하기로 유명한 전공서적에 차례차례 은행잎과 함께 넣곤했다.


그리곤

가을의 끝자락에서 찬기운이 바지밑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전공서적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겨가며 접히거나 구겨진 것을 골라내고

맘에 드는 것만을 골라서

기계 상한다고 안해준다고 우기던 문방구 아줌마를 졸라서 예쁘게 코팅을 해서

아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곤 했다.


몇년간 그 일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릴없이 흘려보내는 가을의 정취를 어떻게든 담아보려는 나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었던 같다.


그런 가을이다.


어제 문득 차를 몰고가다

길 끝에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보고 말았다.


추석....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 그때처럼 추석이라는 두단어가 머리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집에오자마자

서랍 속에서 곤히 잠자던 디카를 깨워 꺼내들고

밖으로 뛰어 나가 나무가지에 걸려있는 보름달을 찍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카메라는

그 둥글고 휘엉청 큰 달을 검은 여백에 좁쌉보다도 작은 점으로 밖에 표현해주지 못했다.

다리에 이따만한 모기에 물린 자국을 덤으로 주고서...


그런것이다.

한국적 기준으로 도저히 가을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후텁지근함

그것을 여기사람들은 Fall이라 부른다.


바로 엊그제까지 허리케인 때문에 집에 갇혀있었고

한해 네개의 허리케인에게 당했다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여유를 가진 친구들...

그리곤 깨닫는다.


그래 내가 너무 오래 학교에 있었나 보다.


대학의 활력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삶을 짊어지고 그 거센 허리케인 바람에 싸워야 했던

이 곳의 어머니 아버지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번을 완전히 돌아

다시 시작된 첫학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마 가장 힘든 학기가 될 듯하다.

적당한 포기와 타협으로 몸은 편안해 졌건만

마음은 몸의 편안함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한다.


잃은 것과 얻은 것,

마음 속 양팔저울로 열심히 재가며

조금이라도 얻은 것 쪽으로 기울이기 위해 오늘도 그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조그만 일에 일희일비하는 나를 느낄때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새삼 무뎌져버린 가슴돌판에 각인시킨다.




가을에 학기가 시작하는 미국에서 2004년 가을, 나는 대학원 2년차였다. 타국에서 혈혈단신으로 가족없이 보내는 명절의 쓸쓸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특히 2004년 여름 '찰리', '프랜시스', '아이반', '진' 등 4번의 허리케인이 강타한 플로리다주는 재산만 25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허리케인으로 모두 61명의 목숨을 잃는 최악의 허리케인 시즌을 보냈다.


유학초기 무척이나 보고싶고 그리웠던 한국의 모든 것,

이제는 이것도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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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2002] - 간절했던 꿈을 향한 유학도전기와 X세대 친구들의 20대시절 고민과 만나는 추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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