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2] 로마가 주는 비애

로마인 이야기

by 짜근별

2007.02.26


얼마전 집에 와보니 나한테 소포 하나가 와 있었다. 뜯어보니 놀랍게도 '로마인 이야기 15'가 들어있었다. 내가 이 책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고 장인어르신께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알라딘 미국지사쪽에 인터넷으로 주문하셔서 보내주신 것이었다. 그 정성에 감명받기도 하고 15년동안 이어진 대장정의 마무리라 정성들여서 읽어나갔다.


15년이란 세월은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를 92년 첫 책을 집필할 당시 50대 중반의 중년여성에서 2006년 책을 완간할 당시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작가가 되도록 만들어 놓은 한 인간사로 국한시켜 생각하면 실로 엄청나게 긴 세월이다.


이제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그녀는, 그녀의 삶에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이 '로마인 이야기'를 생을 정리하면서 로마의 한 카페에서 담담히 적어내려갔을 것이다. (오늘 (2025.12.16) 확인해 보니 1937년 생인 그녀는 아직도 88세의 나이로 살아 있다. 건강은 빈다)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것은 군대생활을 시작했을 때이니까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나도 거의 10년의 세월을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했다.

군대 동기인 남주가 하나 둘 사서 모은 것을 보고 짬안되던 시절에는 야간근무후 화장실 변기 위에서, 짬 되던 시절에는 시간을 쪼개서 빌려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도 매년 한권씩 나오는 로마인 이야기를 기다리는 열렬한 독자의 반열에 서 있게 됐다.

(알아보니 그 남주는 제대후 취직 등으로 '로마인 이야기' 읽기에 손을 놓았지만 학교에 지금까지 머물러 있는 나는 그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 가까이 시오노 나나미의 소리없는 열렬한 지지자(내가 그녀의 위안부 논란과 극우 옹호 발언을 안 것은 이 책 완독후 한참이 지난 시기였다)로 살아왔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15권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녀의 문체에 길들여져 참신한 맛이 떨어진 탓도 있어서인지 약간은 실증이 났다고 해야할까? 한편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그녀의 약간 도를 넘는 비판과 어쨌든 자신은 기독교인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자기확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고, 무엇보다도 열다섯권이나 책을 읽었지만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때 나에게 던졌던 명제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에 대한 명쾌하고 간단한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녀의 책을 논하려면 기독교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말하지 않고는 시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난 내 10년의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을 정리하면서 먼저 종교에 대한 그녀의 태도,

그리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밝히지만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인간이 종교적 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고, 그리고 예수의 인류사적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재 기독교적 교리에서 보이는 몇가지 동조할 수 없는 모순점들 때문에 내가 기독교인이 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 처럼 '난 기독교인이 될 수 없어'라고 강한 부인을 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오노 나나미가 주장하는 것 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반기독교적 색체를 강하게 풍기면서 책을 기술해 나갈 수 없었던 점은 그녀가 높이 평가한 로마적 가치가 기독교의 발흥으로 퇴색되며 인류사의 뒤전으로 밀려버렸기 때문이며, 기독교적 가치로 무장한 로마시대 이후 역사가들이 모든 로마적 가치를 기독교적 색안경을 끼고 평가해 놓았기에 로마적 실체를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로마시대 황제(동로마제국 포함)중에 '대제'면 누가누가 떠오르는가?

서구 역사가의 기술 중에 대제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은 딱 세명이다.


콘스탄티누스

테오도시우스

유스티니아누스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은 '기독교의 공인',

테오도시우스의 업적은 '기독교의 국교화',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은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건립'


이었다. 즉 이들에게 대제의 칭호를 받친 것은 기독교회였다. 물론 이들에게 이런 업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 로마 역사를 통해 통치자로서 이들 못지 않은 선정을 베푼 황제는 많이 찾을 수 있음에도 대제라는 존칭을 붙여서 일컫지는 않는다. 그 점이이 시오노 나나미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가(이게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그녀는 단지 역사 스토리텔러이지 역사가는 아니다)이다.

역사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인류의 반면교사인 역사를 통해 현재의 잘못을 인식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하는 인간 의지의 산물이 역사의 축적과 전승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모든 개개 인류가 구현하고 싶어하는 현세의 안락한 삶과 평화, 그리고 행복의 추구를 역사의 교훈을 통해 공공히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의 개입은 때론 인류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신의 뜻이 항상 선할지 모르지만 이를 해석하는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종교의 극단적 개입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의 반동으로 나타난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현재 지구상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는 대표적으로 종교분쟁이 그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류의 현세에서의 궁극적 안락과 평화, 내세의 삶에 대한 약속을 통해 이루어지며 신의 뜻은 현세의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공존과 평화라고 가르친다.

그런 종교(아니 구체적으로는 일신교라 지칭해야 맞겠다)들이 지배하는 현재의 삶을 돌아보자.

끝임없는 전쟁과 대립, 증오와 복수의 반복.

그게 과연 신의 뜻일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여러 개의 일신교가 지배하는 세상은 그 자체가 지옥이다.

그 이유는 모세의 십계명 제 일절이 잘 말해준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기독교는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의 피의 대립을 겪었고

지금 이라크는 이슬람계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유혈분쟁으로 내전위기로 치닫고 있다.


일신교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그리스 철학이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 중에 하나인 '관용'이 없다.

같은 종교내에서도 파가 다르면 이단이 되며, 이단은 공존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

하물며 타 종교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간의 극단적 종교대립이 빚은 역작용과 기독교의 가치가 인간미 넘치는 그리고 현세 인류의 삶의 보편적 가치에 더 합당한 그리스 로마적 가치를 압도하는 현상에 대해 고운 눈길을 보냈을리 만무하다.


그리니 내가 기독교도가 아닌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믿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그 예수의 가르침을 인류 구원의 메세지로 퍼트리지만

이단과 이교를 인정하지 않고 예단의 칼을 내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일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이 되는 날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기독교 종파가 사라진 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이다.

종교에 대한 아니, 반기독교적 색체에 대한 작가의 입장에 대한 내 생각은 여기서 접고 다시 로마 이야기로 돌아가자.



기원전 753년 건국된 로마는 기본적으로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해 간다.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에서 패자를 지배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동화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지배하나 군림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류사에 깊이 각인시키며 성장해 나간다.

그 결과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민족을 아우른 '보편제국'의 건립이었다.


작가는 이 책 전반을 통해 로마적 가치의 구현이 인간 현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도있게 고찰하고 있다. 그녀가 친로마적 감정이입으로 이책을 써내려간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 것 같다.


1. 피지배자와의 동화를 통한 보편제국의 건립

2. 로마법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삶을 문제없이 영위하기 위한 사상적 체계의 확립

3. 유사시 침략자에게 침략도구가 될 수 있음에도 제국 전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구실을 한 가도의 건설에서 엿보이는 개방성과 소통 중시


특히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로마 최고의 가치는 피지배층의 지배층으로의 흡인과 동화였다.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로마에서 시작한 로마의 확장은


로마 연합을 통한 이탈리아 중부의 통일

이탈리아 남부 통합

이탈리아 북부 갈리아인 정복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의 승리를 통한 아프리카 북부 통합

마케도니아 왕국 정복을 통한 그리스 병합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갈리아(프랑스) 병합


등을 거치면서 정복자의 지배층에게 원로원의 의석을 배분하는 등 폭넓은 동화정책을 편다.

내부의 반대도 있었으나 이는 로마제국 멸망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전통으로 자리잡는다.

이 원리는 흔히들 원나라와 청나라의 대비로써도 잘 알려져있다.

원나라는 몽고족의 한족에 대한 불평등 차별로 곧 멸망의 길을 걷고,

청나라는 피지배층과의 동화를 통해 지배층으로 오랜 존속된 역사를 얻는다.


로마의 이런 개방성은 우수한 인재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로마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고 계층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와 구성원의 사회활동에 큰 동기부여를 주었다. 로마의 역사가 지속되면서 출현하는 남프랑스, 이베리아반도, 발칸반도 출신의 황제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동화정책은 피정복자마저도 로마적 사고로 무장하는 결과를 낳았고, 로마의 국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는 구성원 개개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진정한 '팍스로마나'가 구현되었다. 작가도 강조하고 있지만 농업기술이 발전한 현재에도 기아와 전쟁, 테러로 사망하는 인류의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2000년도 전에 굶어죽을 걱정이 없는 세상을 구현한 로마인들의 노력과 저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개방적이었기에 그들은 남의 장점을 보고 그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탁월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것을 다 하기보다는 피지배층이 더 잘 하는 것에는 로마시민권을 부여해가며 그들 사회의 일원으로 큰 활약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그리스 사람들이 의학과 교육분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뿐 아니라 제국의 동쪽에서는 그리스어도 공용어로 사용했다. 그들은 다원성을 인정했기에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그들 자체가 다신교를 믿었기 때문에 피정복자의 신을 그들의 신으로 끌어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도 신격화한 그들의 성향 때문에 한때 로마의 신의 수가 30만을 넘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종교적 개방성이 한계에 부딪친 곳이 딱 한 곳있는데 그곳은 바로 팔레스티나, 즉 유대인 정착지역이었다. 로마는 유대의 신도 인정했으나, 일신교인 유대인은 절대 타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현재 신약성경에서 보이는 로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정복자로서뿐아니라 로마인들이 유대교 신을 인정한 만큼 유대인들도 피지배자로서 그들의 신을 인정하라는 강요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미국은 민주주의와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사실 민주주의와 기독교는 배치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타인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접점을 찾아서 최선책을 찾아가는 방식인 반면, 기독교는 기독교의 신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민주주의의 모태는 기독교사상으로 무장한 근대 유럽에서 태동한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혼연일체로 어울려 지내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나왔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기원전 509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면서 보인 로마인의 민주주의적 정치체계는 카이사르가 제정으로 전환한 기원 직전에도 변하지 않았으나 (로마의 황제는 오리엔트적 전제군주가 아니라 시민의 제일인자인 '프린켑스' 혹은 군최고 통수권자 '임페라토르'라고 불리웠다), 기원직후 퍼지기 시작한 기독교적 교리와는 엄청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국교화의 길을 걷지만 그것도 현실과의 타협을 통환 로마의 선택이고 그 이후 로마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로마가 기독교를 선택해서 멸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며, 같은 시기 기독교화한 동로마제국은 그후로도 1000년이나 더 지속되다 멸망하게 된다


자 이제 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보자.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왜 멸망했냐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존속할수 있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고 했다.

또한 로마 멸망의 원인은 훌륭한 건축물이었던 로마 자신의 무게 때문이었다고 한다.

흔히들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을 꼽는다. 그리고 이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밝히고 있듯이 로마 멸망의 원인 그 복잡다단한 문제는 책 다섯권으로 써도 모자랄 분량이라고 한다.


제정 전환후 로마제국의 역사는 야만족의 침략에 대비한 수성의 역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야만족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저지한 라인강의 게르마니아 방벽과 도나우강의 방위선이 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면 로마는 그 많은 수의 이민족이 침략을 했더라도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로마의 패기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마 말기 로마 제국의 방위군은 로마시민권자가 아니라 다수의 이민족 용병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국의 방위를 자국민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몇세기동안 이어진다면 그 멸망을 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는 면이 있다. 1000년을 이어온 베네치아 공화국이 용병을 축으로 방위선을 구축하다가 나폴레옹의 단 한번의 침입으로 멸망한 역사에서도 알 수 있는 너무나 자명한 진실이다.


초기의 로마는 로마 시민권자가 군무에 종사하는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다. 사회 지도층이나 저변의 구성원들까지 국토방위의 최일선에서 혼연일체가 되어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제국으로 이행한 직후 방위해야 할 국토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을 때도 피지배자들을 성공적으로 지배계층으로 끌어들여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나눠짐으로써 군무에 종사할 자원이 모자라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랬동안 지속된 평화는 인간의 육체에게는 더 없는 독이다. 물론 외부의 적이 없을 때 그 평화가 인류의 자유로운 사고 증진을 통한 문화의 창달에 더 없는 약이 되지만, 육체적으로 무장하여 외부의 적과 대치하며 힘겨루기를 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나약해진 육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은 항복하거나 타인의 힘에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라크전에 쓰일 병력자원이 모자라 일정기간 이라크에서 병역한 영주권자들에 시민권을 부여하는미국의 현 군사정책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크다. 물론 이런 제도를 로마도 가지고 있었지만 (속주민이 군사면에서 출세하면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런 흐름이 대세가 되고 지속된다면 미국의 앞날도 불투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로마는 '팍스로마나'를 구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팍스'가 로마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이것이 내 결론이다.


지난 10년간 난 너무도 행복했다.

매년 로마인 이야기를 기다려서 책을 손에넣고 읽는 이삼일간은 2000년전으로 돌아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었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함께 카르타고의 멸망을 보며 비애감에 젖기도하고,

술라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두려움에 떨었었고,

카이사르와 함께 8년간 갈리아를 누비며 원정을 다니다 던져진 주사위의 운명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넜고,

폼페이우스와 함께 해적을 소탕했으며,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격파했고,

네로와 함께 그리스 유람을 했었고,

트라야누스와 함께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 정벌을 위해 임시로 건설되었던 트라야누스 다리를 건넜고,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제국 방위 최일선을 시찰하고 다녔었고,

때론 일반 대중과 함께 안락한 카라칼라 대목욕장에서 따뜻한 온욕을 했었고,

포로 로마노의 한 가운데서 로마인들과 이야기하거나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 시합을 보거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집정관들이 네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가 포부당당하게 거행하는 개선식에 참석하거나

혹은 군단기지 최전선에서 야만족과 치열한 전투를 하기도 했었고,

로마제국 동방에서 예수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걷기도하고 유대인과의 마사다요새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고,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고,

로마 제국 말기 방위의 무너져버린 둑을 혼자서 끝까지 지탱하려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나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호노시우스 황제의 시기에 처형된 스틸리코의 죽음을 안타까운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었고,

서고트족과 반달족에게 로마가 속절없이 겁달당하는 것도 보았고,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로마를 비애에 찬 눈으로 보기도 했었다.


2000여년전 로마에서는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을 간다거나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이라는 지블로터 해엽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가서 누미디아 산지의 훌륭한 말을 거래할 때도

그리스로 가서 올림푸스 제전에 참석한다거나

젖과 꿀이 넘치는 가나안 지방을 여행한다거나

지금은 각국의 수도가 된 긴장이 넘치는 라인강 군단기지를 유람한다거나

이집트 산 밀을 수입해다가 시장에 내 놓을 때도


지금 처럼 여권을 가지고 비자를 받고 통관을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슬람화한 북아프리카나 중동과 현 유럽을 생각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그 오래전 고대에 로마인들은 잘도 이루어냈다


사진 속에서 잘 포장된 로마의 가도들을 볼때면 거기를 로마식 복장을 하고 한번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오르고, 무너져버린 로마의 열주기둥 건물들을 보면 고대의 그 위풍당당한 위용과 지붕아래 중간중간의 아름다운 조각상을 박물관이 아니라 실제로 한번만이라고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이제는 로마는 나에게 남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헐리우드 영화(유대교와 기독교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미 멀티미디어 시장이 로마에 대해 친근하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에서 처럼 침략자적 야성만이 넘치는 국가가 아니라 인간성이 이 땅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구체화한 살아숨쉬는 나라가 되었다.


서구 문명의 산실인 로마의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동시대에 살면서 느끼게 해 준 시오노 나나미에게 더없는 이 기쁨의 찬사를 바친다.



먼저 글 초반의 내 종교적 입장에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로 논쟁을 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나는 내가 믿는 신념이 소중한 만큼, 그대가 믿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을 존중하고 그 자유가 침해를 당한다면 기꺼이 그대의 편에 설 것이다.


이 글을 쓴지도 어느덧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게 로마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하루다. 올 초 미국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는 '이제 과거의 그 강력했던 미 제국은 없다'라는 소리로 들렸다. 물론 내 느낌이 틀릴 수 있고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공부하고, 터득한 역사의 가르침에서 오는 본능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스스로의 힘의 사용도 제대로 주체 못하는 사람을 대표자로 선출하는데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가 양산하는 그 많은 가짜뉴스와 그동안 해왔던 비도덕 행동과 도덕적 흠결도 눈 감고 미 우선주의만 내세우는 그의 정치적 수사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미국 서민들의 삶 또한 그 만큼 절실하고 처절하고 힘겹다는 것의 방증이다. 내가 본 평범한 미국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그 많은 이민자들에게는 천국같아 보이지만 결국 서민들의 삶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이 힘들고 팍팍하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삶에 여유와 관용이 사라져 가고 있고 이는 대세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이것이 미국을 제국의 반열에서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원동력이다. 미국은 스스로의 힘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이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순망치한 (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미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통해 구축하려하는 약탈적 경제 체제는 자유 무역을 통해 다 함께 잘 살자는 경제학 교과서의 가장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있다. 남과 내가 다 같이 번영하는 길을 택해야 평화가 오래간다. 나만 위대하고 나만 잘 살자라는 일방주의 끝은 공멸이다.


물론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고 역사는 말하지만 기울어져가는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머지않은 미래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미국이 아닌 'ONE OF THEM'의 미국을 목도하는 날이 올 것이다. 천년을 넘게 이어온 로마도 그랬고, 유라시아 벌판을 휩쓸던 몽고도 그랬고, 지구상 면적을 4분의 1을 차지했던 대영제국도 이를 피하지는 못했다. 모든 성공은 실패의 시작점이며, 번영은 쇠퇴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던 그 막강한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게 빨리와서 미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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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2002] - 간절했던 꿈을 향한 유학도전기와 X세대 친구들의 20대시절 고민과 만나는 추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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