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추억
지난 몇주간 아내에게 핀잔들어가며 새벽 3-4시까지 뉴스를 뒤적이다 쪽잠자고 일어나 출근하길 반복하고 있다. 우국지사도 아닌 내가, 세월호 참사때도 억장이 무너져 TV에서 관련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렸고 잘못됐다고 소리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정말 나도 이해를 못하겠다.
정말 더 이해를 못하고 있던 건 대통령 국정지지도 5%. 이 시국에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그 면상들을 정말 보고 싶었다.
언론에서는 평화로운 시위문화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고 자찬하고 있다. 일견 맞는 말이나 한꺼풀 뒤집어보면 투표때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근본원인을 제거하지 못한 우매한 국민임을 고해성사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난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지 자각해야만 우리는 다시 이런 우매한 국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나는 감정의 혼돈의 연속이었다. 지난 주말 가족들 간의 가벼운 저녁식사 초대에서 만났던 사람이 우연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강남의 그 초호화병원(차병원)에서 최순실과 박근혜를 직접 진료했던 의료진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최씨와 박 대통령을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는 그 둘을 깊이 동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정치적 편견없이 이 사람들과 인간적 교감과 정을 나누면서 혹은 박대통령과 그 어렵다는 식사도 같이 하면서 사람다운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느꼈던 그 동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 내안의 분노와 충동하면서 감정의 혼돈이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5%.
아마도 이것이 그 비밀을 푸는 열쇠인 듯했다. 부패한 권력자들과 그 밑에서 수혜를 받는 부역자들의 공고한 내적 네트워크가 이런 인간적 동정과 실질적 이해 타산의 복잡한 얼개로 하루하루 삶에 지친 대다수의 국민적 소망을 언론통제로 무력화시키면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유지되어 왔다.
문제가 된 저 병원의 년 회원권은 억대를 호가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일반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벅찬 비용이다. 그리고 그 병원은 오늘도 신입 직원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이 신입직원의 연봉은 아마 저 병원을 찾는 '고객'들의 단 몇번 진료비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인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서비업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돈의 의한 주종 관계 즉, 돈에 의한 노예계약인 것이다. 봉건사회와 다른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주종관계는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고, 그렇기에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이를 거부감없이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허나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 기회의 평등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국민들의 저 '분노'와 '증오'의 크기가 이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여담으로 그 의사는 '길라임'의 작명도 청와대 해명처럼 의료진 중 한 사람이 치료 중 그냥 간호사에게 물었는데 그 간호사가 대충 드라마보고 작명한 것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최순실을 모른다고 하는 대부분의 그 사람들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언론에서 이야기 하듯 최순실씨가 정말 통증을 달고 살았냐고 물었더니 그가 일갈했다.
"그건 운동 안해서 그래요"
그 후 난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지난 박근혜 탄핵 사건이 있고나서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다시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겠지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얼마전 우리는 또 한 번의 탄핵 사건을 겪었다. 헤겔의 변증법 핵심 개념인 '정반합'이 현실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게 일어나는 곳이 나는 한국정치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올라갔지만 해외 살면서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는 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지난번 박근혜 탄핵 사태가 났을 때 직장에서 동료들과 밥 먹을 때 그들이 호기심 반과 무시 반으로 물었다.
"너네 나라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대통령 친구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는데 사실이야?"
한마디로 '정말 쪽팔리는 일'이었다. 그들의 질문에 맞장구 치면서도 속으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조국의 정치권 현실이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한창 거리를 뒤덮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나는 미국 중서부의 한 주에서 살고있을 때였는데 정말 우연히도 뉴스에 오르내리던 그 차병원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진료했던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탄핵 사태 전에 이미 그분은 미국으로 주거지를 옮긴 상태였다. 그분은 미국 지역 라디오에도 나와서 환자 상담도 해주는 꽤 유능한 의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의 아내 되는 분도 한국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시인의 따님이었고, 단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참 사람 좋고 똑똑했었던 분이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국에서는 탄핵이다 뭐다 난리가 났었지만 그 분의 어조는 무척이나 담담했고, 박근혜와 최순실을 이야기할 때에도 다른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분노나 원망의 마음보다는 회환과 동정의 마음이 느껴졌다. 세상에 절대악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언이 이 때 만큼 내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은 없다. 사람 간의 교류를 통한 인간적으로 느끼는 애정까지 단죄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의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또 한번의 탄핵 사태를 겪었다. 다시 한국 정치를 대하는 미국 친구들의 조롱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것은 미국 정치가 더 엉망이기 때문이리라. 민주주의는 그만큼 이루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민주주의 요체는 최고의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최악을 피한 것이리라.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배워 왔던 그 민주주의라는 것을 작금의 미국의 정치를 보면서 이제는 미국이 한국한테 배워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이 신기한 요즘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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