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나의 일기
작년 어느 날,
당시 가끔 혼자 막무가내 여행을 다녔던 난,
그날도 며칠 바다보러 갔다가 돌아와
밀린 공과금을 드리러 주인집을 노크했던 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아줌마(아줌마라 해봤자 아마 나보다 몇살 많을거다)가 하늘로 간 것이다.
6살, 3살짜리 말썽꾸러기 아이 둘에 정신없어하고,
조금은 엄격한 시부모님께 한마디 대꾸없이 묵묵히 따르며,
바깥일까지 하시던 그 언니..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첨엔 내가 집을 비워놓고 있긴 했어도,
내가 전혀 모를 정도로 조용히 넘어간 죽음이라..
혹시 힘든 시부모님밑에서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가출한 건 아닐까도 의심도 해 봤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말썽쟁이 지환이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친구: 이제 너 엄마 없지?
지환: 엉... (곧바로) 너 아무개 알지? 우리반 아무개 말야..
걔는 아빠도 없대...
친구: 그래?
이것이 아이들의 대화였다..
엄마가 없다는 게 아픔보다는 부끄러움이었을까?
자기보다 하나 더 없는 애꿎은 아무개를 급히 끌여다붙이던 지환이...
마치 이런 질문에 익숙하단 듯이, 미리 답을 준비하고 있던 아이처럼...
갑자기 울컹했다..
지환이 여동생은 가끔 "엄마~엄마~"하면서 엉엉 운다..
너무도 서럽게 울어댄다..
그 울음뒤엔 늘 따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야단소리..
엄마가 보고싶어서가 아니라도
아이들이 울 땐 "엄마. 엄마"라고 말하게 되어있다..
할아버지, 할머닌 얼마나 또 가슴이 찢어지실까?
한번 드렸던 그 달치 공과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또 달라 그러셨다..
가계부에 기록해놓은걸 보여드려도, 상황설명을 해드려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몇 번 그러셨것처럼
일부러 그럴실분은 아니란 걸 알기에, 나이가 드셔서 잘 잊으니까,
나이많이 드신 분들과 실랑이하기 싫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는 걸로 달랬다....
나 "도대체 이게 몇번째야? 증거를 보여드려도 안 통하고..
그렇다고 매달 영수증 만들어 도장 찍어 달라고 할 수도 없구..
보일러 일까지 합치면 100만원 훨 넘는거 알어?
그리고, 꼭 밤늦게 와서 불러내"
엄마 "(경상도사투리) 그냥 드리레이..못땠구로 어른한테 딱딱 따지지
말고..알았제?"
나 "내가 어른한테 그러는 거 봤수? 엄마니까 이렇게 말하는거지..
위로는 안 해주고..속만 긁네.. 엄마는 엄마돈 안 나가니까 열 안
받는거지..
됐어, 됐어!!..이제 엄마한테 암소리도 안 할거야..
전화 안 할거야.~!"
엄마 "(경상도사투리) 야야..그 집 힘든갑더라..
할무이가 새벽마다 일나가신다카더라.."
금시초문이었다..
할머니가 이른 새벽마다 한번도 안 거르고 나가시는건 알았지만,
전처럼 새벽기도가 아니라, 돈 벌러 나가시는 것이었다...
밤늦게 나를 불러내셨던 이유도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시기 때문이었다..
어제 공과금을 갖다 드리러 갔다...
이번엔 좀 냉정하지만, 영수증을 만들어 도장찍어 달라고 하려고 맘먹고 들렀다..할머니는 들어오라고 하셨지만, 문밖에서 몇마디를 나누었다..
집안이 썰렁했다..할머니만 계시는 것 같았다..
일단 다른 얘기로 말을 시작했다.
나 "할아버지는 어디가셨나봐요? 요즘은 애들도 조용하구요.."
할머니 "엉...할아버지 병원에 계셔..장염으로 수술해야 하는데,
일단 약물로만 치료하기로 했어..
에고고..애들도 요즘은 늘 이모집에 맡겨놓고 있지..
내가 바빠서말야..
이제 지환이는 초등학교 들어가야하고,
그 밑에 놈은 유치원도 보내야 하는데..
엄마 하나 없다는 게 왜 이리 힘든건지..."
예전에 교사생활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무지 엄하고 무뚝뚝하신 분이셨다..
항상 화단을 가꾸고, 뭘 뚝딱뚝딱 만드시고,
가끔 담배피러 밖으로 나오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가끔 내가 장을 봐오다가 밖에서 놀고 있는 애들을 만나면
하나씩 애들 손에 쥐어주면, 할아버지는
"그냥 학생이나 잘 챙겨먹어..뭘 이런거까지 주나?" 하면서 사양하셨고,
애들은 할아버지 등뒤에 숨어 할아버지 눈치만 슬슬 살피다가
억지로 내가 손에 들려주면, 좋아라 받아들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네...할머니께서 힘드시겠네요..빨리 나으셔야할텐데..
제가 병문안이라도 가봐야할텐데.."
뭐 이런 도움안되는 몇마디만 하고,
영수증얘기는 까먹어버린 채 돌아섰다..
솔직히 전보다야 집안이 어렵겠지만,
꽤 괜찮은 자기 집도 있고, 아들도 벌고 하니까 어떠랴? 했었는데
안 좋은 일이 자꾸 겹치니, 돈 문제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나이드신 분들에게 못할 일들인거 같다..
이제 연로하신 두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돈 벌어 애들 먹여 살려야 할 아들과 그 어린 것들만 남겨두게 될까 봐 돌아가시지도 못할 것 같다…
새 며느리라도 들어오면 좋으련만,
어떤 여자가 한창 개구진 애 둘 딸린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오겠는가?
오늘은 일요일 가족모두 교회가는 날이라 그런지
시끌벅쩍 애들소리가 난다..
좀 사람 사는 집 같다..
며느리도 데리고 가고, 할아버지도 병원에 계신데,
그렇게나 열심히 믿는 하나님, 예수님이 원망스럽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교회는 꼬박꼬박 다니시는 걸 보니, 그렇지는 않으신가 보다…
난 이 와중에도, 전세금 못 돌려받는건 아닐까,
내 집 잡혀 놓으신 건 아닐까?하고 걱정하고 있으니...
동생이랑 같이 먹으려고 사들고 들어온 딸기 한 팩을
아이들에게 주어야겠다..
맘이 찹찹하다...
.
2000년대 초에 만든 내 개인 홈페이지 일기 게시판에 그 누나는 가끔씩 그녀의 개인 일기를 옮겨서 남겼다. 보통 오래된 내 일기에 답장 형식으로 오래된 일기에 역순으로 남기고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알림 기능이 없었던 원시적인 게시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일기를 뒤져보다가 그녀가 자신의 글을 내 개인 공간에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어떤 글은 따뜻했고, 어떤 글은 예리했고, 어떤 글은 유머로 가득했다. 평상시 볼 때와는 또 다른 그녀가 글 속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글로 알아갔다.
나는 그녀의 섬세함이 마음에 들었고,
그녀는 내 글 속에 있던 독특한 정신세계의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오랜시간 서로 알고지내던 우리는 그렇게
아는 누나 동생사이에서
남친 여친으로
또 그렇게 여보라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몰래 내 공간에 옮겨 적었던 그녀의 일기 한 편을 가져와 본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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