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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시절

서울역 지게꾼과 돌아오지 않는 북파공작원

by 송종문

한국전쟁이 끝난 뒤, 아버지의 복무처는 HID로 바뀌었다.

HID는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의 줄임말로 북파공작원을 양성하는 육군첩보부대였다.

6.25 때 통신장교였던 경력 때문에 차출된 것으로 보이는데, 맡은 업무도 암호 지령의 수신과 첩보 송신 방법 등 통신 교육이었다.

전후 50년대의 민간인 북파 공작원들은 대개 연고가 없는 고아 출신 등을 골랐는데,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가족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모르는 채 홀로 지내던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북파 공작원으로 충원된 민간인들 가운데는 서울역 주변의 지게꾼 출신들도 있었다. 당시는 서울과 지방을 잇는 물류의 중심이 철도였기 때문에 서울역에는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내린 사람들이 많아서, 역 주변에는 지게꾼들이 흔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이었고, 그저 몸을 써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접근해 "임무만 마치고 돌아오면 집을 한 채 주겠다", 혹은 "백만 원을 주겠다"며 유혹해 북파 공작원으로 포섭한 뒤 외딴곳에서 훈련을 시켰다.

체력 훈련이나, 격투술 같은 몸을 쓰는 훈련은 고되지만 그럭저럭 시킬 수 있었으나 문제는 통신교육이었다.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들이야. 원래는 한글 모스 부호를 가르치고, 무전기 다루는 법, 난수책 사용법 같은 걸 가르쳐야 하는데 그 전에 '기역니은, 아야어여' 같은 한글부터 가르쳐야만 했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여서 많은 문맹자들이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버지가 알기로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북파 된 공작원 가운데 살아서 귀환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북파공작원의 교관과 운용 요원은 각기 업무가 다르지만 같은 조직에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작전의 결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뻔히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 교육을 시키려니 가슴 한편이 항상 무거웠다. "다녀오면 집 한 채를 주겠다"는, 거의 이뤄질 수 없는 허황한 약속을 내걸고 무지한 이들을 죽음의 땅으로 보내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걸고 사기 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과 자책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HID.jpg 이 사진 뒤에는 '거북이를 둘러 싸고 4292.6.20 HID 본부에서'라는 메모가 있다.(단기 4292년은 서기 1959년) 당시에는 우리바다에서 이렇게 큰 거북이도 잡히곤 했다

[관련 역사] 북파공작원이란 1952년부터 1972년까지 북한에 파견되어 활동한 첩보원이다.

1951년 3월 육군본부 정보국 공작과를 확대 개편해 육군 첩보부대 즉 HID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는 남한에 있던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으나 휴전 뒤에는 주로 첩보업무를 수행하다가 1961년 7월 부대명을 AIU(Army Intelligence Unit)로 바꾸었다.

공작원의 신분은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인 경우도 있고, 포섭된 민간인인 경우도 있었다.

60년대의 공작원 포섭과 훈련은 윗 글에 나온 1950년대보다는 훨씬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정보사 물색조팀에 의해 포섭되어 1주일에 한 번씩 4회 면담한 뒤 계약서를 쓰고 채용됐다고 한다. 계약서에는 6개월 교육을 받은 후 이북에 올라가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서 돌아오면, 제대증도 주고, 평생 연금도 주고, 성과에 따라 보상도 주고(개인택시 한 대), 직장을 구해주거나 북파 후 남은 가족들의 생계도 책임져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뒤에는 남북이 공작원 파견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영향인지 1972년 AIU와 육군 정보대(MIG : Military Intelligence Group)를 통합해 육군정보사(AIC : Army Intelligence Command)가 된다.

이후 1990년 각군 정보부대를 통합한 것이 현재의 국군정보사령부(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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