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거절 받고 눅눅해진 채 집으로 들어와 내가 이제서야 인식하는 호의와, 내가 배반했던 호의들이 떠올랐다. 너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았던 호의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었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그 호의들이 애처롭게 나를 혼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워 있던 엄마가 깎아 드신 배 껍질과 남은 배를 치워달라 한다. "엄마가 해 나 피곤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나올 말이 나오다 들어갔다.
“왜 내가 해야 돼?” 관성처럼 뱉었던 말을 이제 쉽게 뱉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누군가도 내게 얼마든지 “내가 왜?”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베푼 호의들이 내게 쌓여 있으니까.
어쩌면 사랑은 왜 내가 해야 돼 라는 말을 참는 일. 참는 걸 넘어서서 기꺼이 하고 싶게 만드는 일. 내 호의를 거들먹거리거나 전시하지 않고,
그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는 일. 그래서 마음이 환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시간.
엄마는 최근 들어 부쩍 외갓집에 자주 가신다.
외갓집에서 엄마는 하루 종일 청소만 한다. 도착하자마자 집 안의 모든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고, 창고인지 냉장고인지 모르게, 할머니가 잔뜩 쌓아둔 음식들을 다 꺼내서 냉장고 내부를 분해해서 씻고, 닦고 무언가는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몇 번을 빨아서 닦고, 또 닦고. 이렇게 청소할 수도 있구나 싶게 내 눈엔 안 보였던 구석까지도- 닦아내며 며칠을 청소만 하신다.
할머니와 함께 걷다가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가 동네 할머니께 “영란이는 우리집에만 오면 하루 종일 청소를 그렇게 해. 아휴. 청소하기가 좋은가” 동네 할머니, 갑자기 역정을 내시며 “아이고 청소하기 좋은 사람이 어딨어. 엄마 집 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하시면 할머니는 허허하고 웃기만 하셨다. 누군가의 사랑을 가득 머금어서 새어나올 수 밖에 없는 웃음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그렇게 청소만 해?” 엄마가 말했다. “너 나중에 나 늙으면 이렇게 하라고”
이미 분에 넘치게 받은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