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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04. 2021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서

멈춰선 것만 같을 때


*

고 1 때 연기 선생님은 우리에게 늘 겁을 주곤 했다. "너네 만약에 연기로 성공 못하면 어떡할래? 어? 잘 되면 좋지 다행이지 근데 안되면? 그때 가서 어쩔 거야" 선생님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기를 하다가 잘 안됐을 때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대책. 나는 고작 17살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선생님이 가혹한 사람이거나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꿈꾸고 있는 황홀한 모습들 사이로 어떤 불안한 예감 따위가 비집고 올라오는 것이 싫었다. 나는 창창했고 겁이 없었고 무모했고 그게 뭐 어떠냐는 식의 용기를 충분히 차고도 넘치게 낼 수 있는 나이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 겁을 준 게 아니라 무언의 질문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

최근 만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이 일을 나 보다 두 배는 오래 한 사람이었는데, 이 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힘든 건지 사라져서 힘든 건지를 겉에서 보는 나는 종잡을 수 없었으나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우리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고 그분은 대화 중간중간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로 가 있는 듯 아무 말 없이 멍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가 꼭 뭔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이 일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거라고 돌려서, 돌려서 말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을 머뭇거리게 된다.

또 한 사람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얼 하고 싶은 에너지가 가득 차서 팽창해버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없어 당황스러운 듯했다. 나는 잘 될 거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고, 그 말이 무책임한 말은 아닌지 곱씹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 일을 어렵지만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

처음 연기를 하고 싶던 중 3 때 나는 한창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 그래서 유난히 어떤 기록을 많이 하던 때였고 심지어 10년 뒤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것도 있다. 분홍색 꽃무늬 편지지에 나는 나에게 지금 보다 더 당당해져 있고, 연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썼다. 나는 그때의 두 배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16살의 감상에 젖은 글들에는, 더 이상의 수동적인 삶을 끝내고 내 꿈을 찾아 항해하겠다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대사 같은 느낌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긋지긋” "언제까지" "왜"라는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문장의 끝에는 늘 “~~ 할 수 있다” "~~ 하게 달라질 것이다"가 있었다. 어쨌든 그때의 나는 16살의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스로가 바뀌었으면 좋겠고,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증거가 넘쳐나니까.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머라이어 캐리나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를 틀어 따라 부르며 나의 노래실력에 놀라거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질리지도 않고 매일 검색해보며, 그들이 어느 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왔는지를 조사했다. 어디를 가야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지를 점쳐보려고. 그러다 학교에 가면 언감생심 그런 꿈은 꿈도 꾸지 않는 척 쥐 죽은 듯 있다가, 결정적으로 예고 원서를 내야 하는 마지막 날에 누가 볼 새라 재빠르게 교무실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이때까지 내 본 적 없는 가장 큰 용기를 내어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써보고 싶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천진한 표정으로 ‘연기과 아니지? 연출과 얘기하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고 힘이 빠졌지만 그렇다고 했고 선생님은 그러면 인문계 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연출과에 가는 것이 낫다는 말로 나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나는 선생님이 내가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는 걸 모르시나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연출과가 아니라 연기과라고 번복하기에는 이미 내가 쓸 수 있는 용기를 다 써버렸기에 시뻘게진 얼굴로 교무실을 나왔다.


*

그 이후에 인문계에 가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야자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는 내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것이 기특했던 것인지 늘 간식을 준비해 놓셨기에 교복 치마가 점점 쪼이고 말아 올라갈 정도로 살만 속절없이 쪘다. 나는 엄마가 준비해놓는 케챱이 잔뜩 뿌려져 있는 야채사라다빵은 좋았지만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중학생 때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 견딜 수 없었고- 그 시간이 괴로울수록 예고에 미련이 남아 계속 예고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언제 편입시험이 뜨나 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편입 공고가 떴다.


*

더 기적적으로 10:1(정확하지는 않고, 내 기억에 기대어 적어 본다면)의 경쟁률을 뚫고 편입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 문자가 온 날 우리 집은 초상집이었다. 교복도 다시 맞춰야 하고, 교통비에, 학비도 인문계보다 비싸서 지원해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처음 엄마에게 편입시험을 보고 싶다고, 연기라는 게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망설이지도 않고 '그래라' 하시길래 의아했건만, 그 '그래라'는 100% 떨어질 것이니 보든지 말든지 너 맘대로 해라의 그래라 였음을 뒤늦게 알 게 됐다. 나는 예고에 보내줄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서 늘 엄마와 싸웠다. 싸우다가 울었고 울다가 싸웠고 그러다 몸도 좀 아팠다. 울며 불며 내 방으로 들어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기업들에 미래 예술 꿈나무를 지원해달라는 메일을 쓰기도 했다. 거의 답이 없었지만, 한 두통 정도는 이러저러해서 죄송하다는 답장이었다. 나는 엄마와 다시 싸워야 했고 엄마는 종국에 눈물을 흘리 시기까지 했다. 나는 그래도 가야겠다고 했다.


*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연기를 하고 싶기 전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지루했었으니까. 연기가 하고 싶어서 엄마의 눈물을 보고도 예고에 가겠다며 윽박을 지르는 패륜을 저질렀으니까. 고 1 때 선생님께서 다시 "너네 만약에 연기로 성공 못하면 어떡할래? 어? 잘 되면 좋지 다행이지 근데 안되면? 그때 가서 어쩔 거야"라고 묻는다면 "그래도 연기가 하고 싶었던 걸 어쩔 수 있나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그 선생님의 질문이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어떨 때는 패배자의 질문으로, 어떨 때는 현명한 사람의 질문으로, 어떨 때는 생활고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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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대 버스 정류장에서 한 선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선배가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고 안부를 묻기도 전에 그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나의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일으키는 것이 싫어서 약속에 늦은 척 서둘렀다. 안타깝게도 신호등은 아직 빨간 불이었고, 선배는 기어코 “너 요즘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어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잘 지내요”라고 말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미친 사람처럼 뛰었다. 16살의 내가 버스정류장에 서서 미친 듯이 뛰는 나의 뒷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나는 그럼에도 똑같은 꿈을 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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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서 말했던 두 사람을 생각한다. 두 사람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기회가 없어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점점 확신이 없어지는 나와 내 동료들이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무얼까.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것일까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는 것일까 나는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멈춰 있는 것일까 나는 둘 중에 어느 쪽에 믿음을 둬야 하는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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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걸음을 멈추고 내려와 평지에 선다. 그리고 16살로 돌아가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나는 몸도 무럭무럭 자랐고, 그리고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무시당할까 움츠러들어서 늦은 새벽 글을 끄적이는 걸로 마음을 달랬던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 연기하며 벅찬 순간들도 생겨났고 좀 더 다행인 것은 그때보다는 훨씬 당당한 사람이 된 것이다. 종아리와 발목이 아릿하다. 그래도 좀 더,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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