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오늘도마이너스를위해달려
맞으면 아플 정도로 억수같이 소나기가 온 날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장대비였어- 이어달리기를 한 적이 있었어. 일단 경비실에서부터 자전거 거치대까지. 이어받아서 옆 동을 돌아서 다시 경비실까지 달리는 거야. 타닥- 따닥- 날 선 빗줄기를 맞으며 달렸어. 경쟁하듯 웃으며. 다 씻겨나가고, 뚫고 지나가면서.
나는 살아오면서 줄곧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 같아. 어릴 때는 당연하다는 듯, 영원히 그럴 거라는 듯 내 차지였던 그 시원함이- 학교에 가고, 내야 될 돈을 세고, 스스로 별 볼 일 없는 인간은 아닌가 낯선 의심을 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사라진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을 떠안고 견뎠어. 다시 그런 느낌들을 차지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가늠하다가도 포기하기도 하면서.
나이를 더해가며 무료하게 뭔가를 견디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달리기는 '포만감'이었어.
우월한 느낌, 내가 이긴 느낌, 특별하다는 느낌을 우걱우걱 먹으며 내 몸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쥐고 싶었어.
그렇지만 지나친 욕심이나 완벽주의 같은 것들을 계속 먹으면- 늘 열패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애초에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습관처럼 욕심을 부리고, 해내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처럼 달리고도 열패감에 시달리는 밤이면 늘 수화기를 붙들고 몇 시간 씩이나 친구들을 괴롭혔지. 여러 초조함과 불안감을 끝도 없이 토하며 그들이 뱉어주기를 기다렸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간혹 승리감에 도취된 밤에도 속이 시원하진 않았던 것 같아. 어쩐지 그런 날이면 전화할 친구들이 줄어들기도 했고.
늘 울리지 않는 전화벨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가끔 전화벨이 울리면 기쁘다가도 그 전화가 잘못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아서 노심초사했어. 전화를 아주아주 열심히 기다리느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 늘 불안에 떠느라 다른 사람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어.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날 바라볼 겨를이 없었고.
열일곱.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무언가를 플러스해가고 싶다는 감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왔어. 시작점에서의 나의 활기와 열정은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무모였고, 첫 성과 지점을 넘어와서는 더 큰 성과를 볼 수도 있겠다는 과욕이었고, 이 트랙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쉽게 끝이 나는 트랙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난 조금 아픈 상태였던 것 같아.
아파 본 후에는 ‘마이너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비를 맞으며 뛸 때의 그 가벼웠던 체중을, 들썩이던 얼굴 근육을 감각하고 싶어 졌어.
그리고 내 속이 가벼워야 비로소 움. 직. 일.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해낸 것 같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섰던 때가 기억 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반장선거 날이었고 늘 그래 왔듯 무신경했어. 근데 갑자기 선생님이 비장하게 눈을 감으라고 하는 거야. 어둠 속에서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차분히 떠올려보라고 했어.
'자 이제 눈을 뜨고 떠올랐던 사람을 추천해주세요.'
그런데 캄캄함 속에서 떠올랐던 인기 많은 아이가 내 이름을 얘기하는 거야.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했지. 비교적 내성적이었던 내가 반장 후보가 된 건 처음이었고, 또 누군가가 내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는 건 늘 설레는 일이잖아.
다른 아이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가 얘기하는 동안 내 머리는 까매졌다 하얘졌다가 공포였다가 설레기도 하면서 할 말들을 그렸어. 내 존재감을 드러내 보고 싶었던 것 같아.
드디어 내 차례가 됐는데- 숨이 턱 막히는 거 있지.
아이들 눈빛에 별 기대가 없어 보이는 게 내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지. 선생님은 잔인하게도 15분가량을 기다려줬고. 거짓말이 아니라 한 단어, 아니 한 글자도 말하지 못하고 자리로 들어왔어.
근데 그때 만약 스스로를 마이너스했으면 무슨 말이든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수 백 명의 스텝들 앞에서 스스로를 마이너스했다면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서 정체 모를 연기를 하고 수치심과 자괴감에 으스러지듯 집에 돌아가진 않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부대껴야 할 때 스스로를 마이너스했다면 남도 미워하고 나도 미워하느라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진 않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지금부터라도 마이너스한다면 다시 그 빗속에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시 그 반장선거 날로 돌아가서 아이들 앞에 서. 그들의 눈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봐.
나는 다시 그 촬영 현장으로 가서 굳은 얼굴을 억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늘 용기가 생기니까.
나는 늘 공포스러웠던 사람들 안으로 들어 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괜찮은 척하느라 온 에너지를 쓸 바에야 차라리 울어. 그러면서 얘기해.
나는 오늘도 마이너스를 위해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