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나는 ‘내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싫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여태 나한테 ‘네가 그럼 그렇지’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기는 것만 같다, 그 사람들 말이 다 맞았던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종종 ‘네가 그럼 그렇지’라고 했던 타인의 말에 나의 가치를 모두 내맡겨버린다.
나의 10대와, 20대는 피드백의 홍수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종종 피드백과 함께 날아오는 인격적인 무시에도 무방비했다. 그것은 미묘하게 뒤엉켜있는데, 내 연기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과 더불어 미래를 한정 짓는 말을 한다던지, 태생적인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던지, 노력 자체를 평가절하한다던지. 어쨌거나 나는 연기를 못하면,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은 호평을 받으면 너무 우쭐한 상태이거나 혹평을 받으면 너무 기가 죽어있게 했는데, 그 기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의 판단이었고- 그러니까 연기의 피드백에 따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점점 헷갈리지 않는 명확한 폭언에도 나는 무방비했고, 무력했다. 가끔씩 참지 못하고 일갈을 날리기는 했으나- 그 마저도 그 일갈에 내가 피를 보는 것을 아닐까 생각하며 며칠을 벌벌 떨었다.
고등학생 때,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아니 사실 20대 내내 그렇게 혼이 나도 그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이며, 부족함이며, 더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혹독한 말들이 ‘그래, 이렇게 할 수 있었잖아’ ‘이제 잘하네’ 하는 칭찬의 말로 바뀔 때의 자극적인 희열. 그래, 역시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였어. 내가 태초에 부족한 인간은 아니었던 거야 나는 결국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었어 라는 성취감을 부여잡는 순간들이 간혹 찾아왔기 때문이다.
남들의 판단이 꼭 나의 모든 것을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인데- 어쩌면 한 번도, 이렇게 혼이 날 일인가,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이지? 를 검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앞에 혼을 내는 사람이 없으면 더 불안한 20대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늘 혼내줄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꼭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 아닌 사람이어도, 나보다 똑똑해 보이고, 나보다 나를 잘 판단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내 연기에 대해 묻고, 내 노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혼이 났다. 그 굴레에 갇히다 보니, 결국 누군가는 계속 나의 흠을 찾아냈고, 그 흠 때문에 스스로를 싫어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바닥을 쳤다.
몇 달 전에 오디션 하나를 봤다. 잘 보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오디션 장 앞 외진 골목에 들어가 연신 대사를 읊조렸다. 손에 쥐가 났다. 다 망쳐버릴 것 같기도 했고 잘 풀릴 것 같기도 했다. 그 오디션장에서 나는 피드백이 아닌 공격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말들을 들었다. 나는 처음엔 놀랐고, 이후엔 화가 났고 결론적으로는 쪼그라들었다. 오디션을 마치고 도망치듯 전철역으로 향했다. 내가 20대에 타인의 말에 스스로를 내 맡겨 버린 것, 그리고 속이 얹히도록 그 말을 삼켜서라도 선택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조바심. 그리고 그 말들이 내 안에 쌓여 결국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에 대하여 뒤늦게 후회했다. 나의 넘치는 과욕과 나를 허무는 말들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무기력 모두를.
잘하는 것보다도 이 일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 아닐까. 사랑하면 용기가 생기고 용기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게 되니까. 아무 일이 없어서 내 방에서 공기처럼 부유하는 시간에도 뭔가를 그릴 수 있게 되니까.
몇 년 전.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일을 쉬고 있다는 수치과 압박감에 한창 시달릴 때, 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었다. 후배는 상심한 목소리로, 오디션 영상을 찍고 있는데 하루 종일 찍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고,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 차분한 목소리로 '나는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후배는 바로 눈물을 터뜨렸고, 나는 그렇게 약한 마음이 못마땅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때 그 말을 했던 것을 오랫동안 후회했다. 그리고 종종 그 상황을 리와인드해서 읊조린다. '고생했네. 이제 그만 찍고 좀 쉬어. 잘했어!' 그리고 아주 어렵지만 나에게도 그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그럼 그렇지 라고 말하는 대신에, 저런 말들을 읊조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