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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6. 2020

마이너스의 달리기

프롤로그|나는오늘도마이너스를위해달려

맞으면 아플 정도로 억수같이 소나기가 온 날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장대비였어- 이어달리기를 한 적이 있었어. 일단 경비실에서부터 자전거 거치대까지. 이어받아서 옆 동을 돌아서 다시 경비실까지 달리는 거야. 타닥- 따닥- 날 선 빗줄기를 맞으며 달렸어. 경쟁하듯 웃으며. 다 씻겨나가고, 뚫고 지나가면서.


나는 살아오면서 줄곧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 같아. 어릴 때는 당연하다는 듯, 영원히 그럴 거라는 듯 내 차지였던 그 시원함이- 학교에 가고, 내야 될 돈을 세고, 스스로 별 볼 일 없는 인간은 아닌가 낯선 의심을 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사라진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을 떠안고 견뎠어. 다시 그런 느낌들을 차지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가늠하다가도 포기하기도 하면서.


나이를 더해가며 무료하게 뭔 가를 견디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달리기는 '포만감'이었어.

우월한 느낌, 내가 이긴 느낌, 특별하다는 느낌을 우걱우걱 먹으며 내 몸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쥐고 싶었어.

그렇지만 지나친 욕심이나 완벽주의 같은 것들을 계속 먹으면- 늘 열패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애초에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습관처럼 욕심을 부리고, 해내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처럼 달리고도 열패감에 시달리는 밤이면 늘 수화기를 붙들고 몇 시간 씩이나 친구들을 괴롭혔지. 여러 초조함과 불안감을 끝도 없이 토하며 그들이 뱉어주기를 기다렸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간혹 승리감에 도취된 밤에도 속이 시원하진 않았던 것 같아. 어쩐지 그런 날이면 전화할 친구들이 줄어들기도 했고.


늘 울리지 않는 전화벨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가끔 전화벨이 울리면 기쁘다가도 그 전화가 잘못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아서 노심초사했어. 전화를 아주아주 열심히 기다리느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 늘 불안에 떠느라 다른 사람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어.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날 바라볼 겨를이 없었고.


열일곱.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무언가를 플러스해가고 싶다는 감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왔어. 시작점에서의 나의 활기와 열정은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무모였고, 첫 성과 지점을 넘어와서는 더 큰 성과를 볼 수도 있겠다는 과욕이었고, 이 트랙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쉽게 끝이 나는 트랙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난 조금 아픈 상태였던 것 같아.




아파 본 후에는 ‘마이너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비를 맞으며 뛸 때의 그 가벼웠던 체중을, 들썩이던 얼굴 근육을 감각하고 싶어 졌어.

그리고 내 속이 가벼워야 비로소 움. 직. 일.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해낸 것 같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섰던 때가 기억 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반장선거 날이었고 늘 그래 왔듯 무신경했어. 근데 갑자기 선생님이 비장하게 눈을 감으라고 하는 거야. 어둠 속에서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차분히 떠올려보라고 했어.

'자 이제 눈을 뜨고 떠올랐던 사람을 추천해주세요.'

그런데 캄캄함 속에서 떠올랐던 인기 많은 아이가 내 이름을 얘기하는 거야.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했지. 비교적 내성적이었던 내가 반장 후보가 된 건 처음이었고, 또 누군가가 내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는 건 늘 설레는 일이잖아.

다른 아이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가 얘기하는 동안 내 머리는 까매졌다 하얘졌다가 공포였다가 설레기도 하면서 할 말들을 그렸어. 내 존재감을 드러내 보고 싶었었던 것 같아.

드디어 내 차례가 됐는데- 숨이 턱 막히는 거 있지.

아이들 눈빛에 별 기대가 없어 보이는 게 내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지. 선생님은 잔인하게도 15분가량을 기다려줬고. 거짓말이 아니라 한 단어, 아니 한 글자도 말하지 못하고 자리로 들어왔어.


근데 그때 만약 스스로를 마이너스했으면 무슨 말이든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수 백 명의 스텝들 앞에서 스스로를 마이너스했다면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서 정체 모를 연기를 하고 수치심과 자괴감에 으스러지듯 집에 돌아가진 않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부대껴야 할 때 스스로를 마이너스했다면 남도 미워하고 나도 미워하느라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진 않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지금부터라도 마이너스한다면 다시 그 빗속에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시 그 반장선거 날로 돌아가서 아이들 앞에 서. 그들의 눈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봐.

나는 다시 그 촬영 현장으로 가서 굳은 얼굴을 억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늘 용기가 생기니까.

나는 늘 공포스러웠던 사람들 안으로 들어 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괜찮은 척하느라 온 에너지를 쓸 바에야 차라리 울어. 그러면서 얘기해.

 



나는 오늘도 마이너스를 위해 달려.





커버이미지와 위의 그림은 이지은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출처는 인스타그램 @lee_eun24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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