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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11. 2020

글쓰기가 버거운 날에는

솔직해지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빈 화면만 멍하니 바라본 채 몇 달을 보냈다.


아무리 지쳐서 집에 돌아온 날에도 무언가 적고 싶은 게 생각나면 괜히 생기가 돌고 뭔가를 적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금세 올라왔다. 근데 몇 달간은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 거창할 것도 없이 적어온 글이지만, 그 생동 해지는 기분이 그리워 마음이 초조해졌다.

작년에 블로그에 글을 올려보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타자를 두들겨댈 때의 그 시원해지던 마음이 떠올라 더 답답했다.


글을 적는 시간이 내게 주는 행복감은 여러 갈래의 것인데 가장 큰 이점은 스스로가 위로받는다는 데 있다. 내가 넘어온 시간들이 그래도 이런 글이 되고, 또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는 매개체가 되는 순간들이 좋았다.

 

또 하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적다가, 익명의 독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너무 포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지만, 어쨌든 뭔가를 적으려면 내 생각을 알아봐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불쑥 튀어나와서 스스로를 잘 알게 하는 데


그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떡해야 하나 싶더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참 무대포고, 시야가 좁다고 해야 하는지 무지하다고 하는 게 맞는지, 노력해서 안 되는 건 별로 없다고 진정으로 믿었다. 그래서 뭘 하던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그 지친 기색으로 얻어낸 '무언가를 열심히 해냈다는 실감'을 동력으로 살아왔다. 오늘도 열심히 연습했어, 오늘도 열심히 걸었어, 오늘도 열심히 가르쳤어, 오늘도 열심히…….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지 않을 때의 내 모습은 단숨에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 우선순위가 전복돼서- 그 일에 대한 본질적인 마음 때문에 열심히 하기보다는 부지불식간에 찾아 올 불안이 두려워서 그 두려움 때문에 열심을 쏟게 되는데, 두려움의 추동에 의한 노력은 아무리 열을 다해도, 뭔가 경쾌한 동력으로 바꿈 되지 못하고, 지치게만 한다. 그러니까 동력 없이 계속 구르게 되는 것이랄까


그렇게 동력 없이 고속도로라도 타야 하면 큰 낭패인데,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때 최대한 용기를 갖고, 갓길로 빠지기라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사면초가는 면할 텐데 그 ‘용기’라는 것이 불안이 커졌을 때는 도저히 낼 수가 없는 것이라 갓길이 잠시 눈에 들어오더라도 정차할 용기를 낼만한 힘까지도 그 두려움을 메우는 데 다 써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기름이 다 떨어져 고속도로 한가운데 정지해 다른 차와 충돌사고가 난다거나, 어떻게 어렵게 종착지까지 다다르긴 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패배감만 드니 그제야 당황하며 본인이 내지 못했던 용기가 떠오르고, 두려움에 잠식됐던 마음은 쉽사리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에서 엉거주춤 내렸는데도 계속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빠질 용기를 내지 못했던 스스로를 조금은 용서해야, 다시 솔직해질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느꼈다.


솔직해질 용기가 내게는 글을 쓰는 동력이었고,


'무언가를 열심히 해냈다는 실감' 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것이라고-


글이 써지지 않던 몇 달 동안을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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