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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Jun 12. 2020

저건 내 얼굴이 아니야

시초는 싸이월드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사진을 게시하며 어쨌든 뭐라도 보이거나 자랑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부추기는 SNS를 항상 옆에 두고 살아왔으니 내 얼굴이 이상하게 보일까 늘 미덥지 않았던 나는 유난히 사진에 민감하게 굴었다.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는 무조건 손으로 입가를 가리거나, 누군가 올려도 되냐고 물어보면 괜히 경끼 하며 그러지 말라고 애걸복걸한다. 그러고는 내 눈에 보기 좋은 사진들, 잘 나오려고 몸부림치며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며 그 외의 모습들은 내 얼굴이 아니라고 세뇌했다.


모니터나 스크린 안의 그 얼굴을 인상 찌푸리지 않고 본 적이 언제였지-

내 모습을 보기 싫어했기 때문에 더욱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을 열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라 '저 얼굴'로 명칭 됐고, 모니터 앞에서 여러 사람들 속에서 웃고 있지만 속으로 ‘저건 내 얼굴이 아니야’라고 생각 한 적도 있다.




그럼 너의 진짜 얼굴은?

mounde studio / kyma 작품


그렇지만 타자가 되어 내 얼굴을 확인할 일이 많은 직업을 선택했고,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보다는 별로인 모습을 눈으로 더 자주 확인하니, 이제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자꾸 얼굴에 뭐가 묻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리고, 표정도 가려버리면 마음이 닫히고, 다치고- 연기를 할 수 없으니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네가 배우 할 얼굴은 아니지’ ‘네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냐?’ ‘너무 촌스럽게 생겼어’라는 말들에 분노하고 그 말들이 날 괴롭힐 때마다 속으로 칼 같은 일갈을 날렸지만, 나 또한 스스로의 얼굴을 품평하고 유일한 기준인 ‘비교’로 스스로를 갉았다.

비교는 비열하다. 어떻게 좋은 생각을 해봄으로써 우위에 있으려 해도 비참해지고, 끝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은 헌 것처럼 빛바래 보여서 도무지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해 줄 수가 없다.


30대로 접어들며 나이가 주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이 내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몸부림치며 시기했던 마음, 스스로를 열등하다며 채찍질했던 마음들을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쓸어보듯 쓸어볼 수 있게 되어서- 내게도 괴로움을 동반한 배움이 축적되고 그 시간 안에서 아름답지 않고 고통만을 주는 마음들을 외면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아직 내 모습을 똑바로 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좋아해 주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얼굴도 살아있는 생물이어서, 내 생각을 다 알아채버리는 세포여서, 내가 편한 마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무서웠던 카메라와 많은 시선들 앞에서 내 얼굴을 미워했던 그 감각들을 잊고 순간에 들어가 준다.


내 얼굴이 태어나 최초로 공포를 느꼈던 때를 기억한다. 동네 남자아이의 “ (조소 섞인 말투) 넌 네가 이쁜 줄 아냐? 우웩”. 내 얼굴은 내게 말한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상상 속에서 그 남자아이 꿀밤을 때리고, 그냥 웃어넘겨버리라고.



그냥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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