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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Feb 07. 2023

온돌방 아랫목에서 하룻밤 어때요

마을 이야기 4

 아픈 곳이 없는데도 온몸이 낫는 기분이랄까요


 작은집 한편에는 작은방이 있습니다. 코딱지보다 살짝 큰 이 작은방을 저는 가장 좋아합니다.

나지막한 천장과 노란 불빛, 벽에 걸려 있는 이불장과 막걸리 생각이 저절로 나는 한지 붙인 벽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지만, 그중의 백미는 아궁이 불로 지글지글 데워지는 아랫목이지요.


 엄마의 오래된 기억 속에 있던 단칸방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 갔었던 외갓집을 떠올려보면 삐걱거리는 나무 문 안에 시커먼 부엌이 있었고, 거기엔 수북이 쌓인 장작과 검게 그을린 아궁이 그리고 커다란 가마솥이 놓여 있던 기억이 납니다. 꼬부랑 산길을 넘어가야 했던 시골이라서 저는 항상 멀미에 시달렸고 도착하면 곧장 아궁이방 아랫목에 누워 뻗어 있었지요.

엄마는 추운 겨울 손 터져 가며 주워 왔던 땔감을 생각하면 너무 고달팠다고 하면서도 아궁이에 장작을 땔 수 있는 온돌방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 아늑한 작은방을 지었습니다.


 지금이야 누군가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땔감을 주워 오는 일은 하지 않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빠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나뭇잎이 모조리 다 떨어지고 산자락이 그대로 속살을 드러내면 여러 계절동안 쓰러지고 꺾이고 썩어 부러진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아빠가 나설 때인 것이죠. 차로 한가득 땔감 나무들을 집으로 나르고 금도끼 은도끼로 장작을 패고 쌓아 둡니다. 가을부터 아궁이 불을 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줄어드는 나무 걱정에 엄마는 한숨을 폭폭 쉬다가도 다시 가득 쌓인 장작을 보면 ‘나무 부자’가 되었다며 좋아하십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돌아온 겨울 살림입니다


 불쏘시개로 쓸 나뭇잎이나 잔가지를 쌓고 조금 더 굵은 장작들을 넣고, 그 위에 가장 굵은 나무들을 켜켜이 쌓아 불을 붙입니다. 타닥타닥 마른 나무에 불이 붙는 그 순가의 소리와 냄새를 좋아합니다. 한파가 몰아닥칠 때에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무조건 쪼그리고 앉는 것이 정석이지요) 살갗이 간지러울 정도로 금세 뜨거워집니다.

불이 점점 사그라들고 나무들이 벌건 숯으로 변하면 고구마, 감자, 옥수수 같은 온갖 구황작물들을 구워 먹는 재미가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저는 그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벌러덩 눕는 게 제일로 좋습니다. 보일러도 아니고 전기장판도 아닌 달궈진 구들장에 눕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온도지요. 누워서 책이라도 한 장 넘기려고 하면 그저 눈이 스르르 감기는 건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고구마보다 막걸리가 더 생각나겠지요


 늦은 오후 즈음에 아궁이 문을 열고 불을 때기 시작하면 굴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그것이 또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을 이 집 저 집에서 비슷한 시간에 연기가 새어 나오는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하지요. 그때쯤 방을 데우기 시작해야 다음 날 아침까지 뜨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아시니까요. 어떤 집은 방을 데우는 참에 가마솥에 푸짐한 저녁거리를 준비할 수도 있고, 어떤 집은 온수 대신 펄펄 끓는 물을 준비할 수도 있구요.

참, 예전에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의 겨울 산촌에서는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저녁 내내 아궁이 앞을 지키고 새벽녘에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보았는데요, 사실 그렇게 밤새 장작을 넣다가는 장판이 홀라당 눌어붙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답니다. 물론 옛날에 만들어진 구들장과 차이도 있을뿐더러 아무래도 코끝을 시리게 하는 외풍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의 온돌에겐 쉽게 꺾이지 않는 기세가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쓰다 보니 잊고 있었던 그 장면이 생각나 '어, 그때 그 방바닥은 다 눌어붙었겠는데'라는 괜한 오지랖이 생깁니다.


 종종 느릿느릿 고요한 쉼이 필요한 분들께 하룻밤 빌려드리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책방이 있으니 책을 좋아하신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날이 좋을 땐 쪽마루에 앉아 바람도 쐬고 햇볕도 쬐고 밤엔 별도 달도 잘 보이는 동네라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묘한 반가움과 동질감을 느낍니다. 작은방은 그런 곳이거든요. 혼자 여행 오셔서 친구가 필요하다면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 같이 하는 것도 대환영입니다. 옆에서 호두가 같이 놀자고 칭얼거리기도 하지만요. 그 모든 것이 작은방이라서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입춘이 지났으니 곧 봄이 오겠지요. 요즘에 일교차가 크지만 낮동안은 포근한 바람이 스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궁이는 열심히 타오릅니다. 초여름 전까지는 아주 작은 불이라도 필요하더라구요. 든든히 쌓아 둔 장작더미에 한동안은 배가 부르니 오늘도 저는 누우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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