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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줌 Oct 05. 2021

일상 심리

나는 호구인 거죠.?

열전사지 주문을 받았다. 가족티에 붙이는 열전사지로 8개. 급하다고 오늘 안에 가능하냐고 물었다.

느낌적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왠지 들어주기 싫은 주문이었다. 어떻게 주문하는 거냐 어떤 색으로 해야 하냐 다급한 질문에 디자인은 해드리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다.

바로 전화가 와서 처음 주문이라 그렇다며 말하시는데 어찌 됐건 주문을 받아 들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마주치지 않으면 어떠한 말도 할 수 있는데 한번 대면한 사람과는 어떤 친근감이 들게 되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목소리로 통화까지 하고 나면 대차게 거절하기도 그렇다. 그건 100프로 목소리를 통한 교감보다는 목소리 톤의 나긋함이 조금 내 마음을 설득한 거 같다. 4시 30분까지 물건을 찾으러 오겠다는 분은 50분까지는 꼭 와주셔야 한다고 말했지만 5시에나 도착했다..'아. 10분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주문한 물건을 받아 들고 즐겁게 가셨다. '아! 만족하셨으니 됐다. 뿌듯해라. '  여기서 끝났으면 좋을련만

저녁 10시 반 전화가 울린다. 흠칫! 뭐지? 이 시간에. 받지 말까 하다가 전화를 받아 들었더니 오전에 가져간 물건에 개수가 빠졌단다. 당장 내일 오전에 쓸 건데 빠져있다시고 사는 지역을 물으니 여기서 한 시간 떨어진 지역이다.


일단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머릿속은 어떻게 가져다 드려야 하나 혼란스럽다.

"혹시 가지러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웃으면서 가지러 오시겠다는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헌데 시간이 밤 10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어휴 미안해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상품 추가 금액은 안 받아야겠다는 생각과 만약 안 가질 오신다고 했으면

퀵 비용으로 5만 원? 내가 오늘 오전에 주문받은 금액보다 더 많이 낼 상황이다. 내.. 실수로.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고 당장 해주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내 실수겠지. 그리고 주문 톡을 봤더니 주문 내역이 없다. 본인이 당장 낼써야하니 급한 마음에 주문을 누락한 것이다. 다시 전화 걸어 주문내역에 없다고 하니 본인도 찾아보더니 어이가 없는지 전화통화 건너로 서로 뻘쭘한 웃음이 오갔다. 이제 반대로 그쪽에서 죄송하다고 한다. "지금 해달라는 건 안 되겠죠? 이 시간에 그건 안 되는 거고.."


부탁인 듯 부탁 아닌 말들을 연신 내뱉었다.

머릿속은 안 되는 걸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횡설수설했다.

그래, 어차피 내실 수였어도 이 밤에 이곳까지 온다는 분인데 내실수가 아닌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해주자.

해드린다고 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 가듯 가게로 왔다

어려운 일거리도 아니다. 10분이면 된다.

 다만, 작업시간 10분을 위해 나는 두 아이들 옷을 밤 11시에 챙겨 입혔고 혹시나 정신 사납게 엄마를 찾을까 마트에 들려 두 아이 손에 좋아하는 음료수를 들려줬다. 작업실에 에어컨과 노트북을 켰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작업시간보다 배 이상 걸렸다. 그리고 12시가 되기 전에 혹여나 없어도 됐을 사고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야 내 미션은 끝이 난다. 괜히 나왔다가 아이가 길거리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내가 해주겠다고 하고 괜스레 그 고객을 탓할지도 모른다. 작업하면서 스멀스멀 '난 호구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격이 중요하겠나.

내가 만드는 상품의 가격보다 내일 있을 행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작업이 마칠 때쯤 전화가 왔다.

"사장님 하. 하. 하"

뭔가 멋쩍은 웃음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이왕 이렇게 작업해주시는 거 추가로 더해주실 수 있냐고 가족들이 이런 것도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기대한 듯 물었다.

얼마든지 그렇게 부탁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 입장에서 더 이상 해드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드렸다.


지금은 밤 11시이고 3천 원 자고 해 드리는 일이 아니다. 칠순 가족티이기 때문에 빠진 부분은 도와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내일에 대한 행복감과 기대에 차 있던 고객은 그제야 현실로 되돌아온 듯했다.

"제가 잘못된 부탁을 드린 거 같다. " 더 이상 고객에게 웃음기 있는 목소리는 찾을 수 없고 진중된 톤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가게 우편물에 넣어뒀으니 고객은 행사 시간에 맞춰 상품을 찾아갈 것이다. 나는 무사히 두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시급으로 치면 한 시간에 8,720원 야간수당 50프로.

아무런 이익없이 되려 손해 보며 장사하는데 도대체 난 왜 이런 쓸데없는 배려심을 가진 걸까 자책하는 밤이다.


항상 다른 주문 건 다른 고객이지만 6년 동안 틀리지 않는 한 가지는 급하다는 고객에서  문제가 생긴다. 급하게 주문한 고객이 실수로 주문하든 급하게 만든 내가 실수하든.

잘못된 상품의 80프로는 급하다는 고객에서 온다.

"이틀 뒤에 써야 합니다. 급한 건데 오늘 배송 가능할까요?"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잘도 배송되는 지역도 '급한데요'라는 주문건에 택배 지연됐다거나 상품이 다른 지역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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