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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Nov 14. 2017

가을가을한 날들

브런치를 열며,




몇 년 전 나는 경기도 수지의 한 외딴 마을에서 살았다.


수지라고 하면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선, 그런 신도시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드넓은 용인 수지에는 별의별 마을들이 다 있기 마련.


빽빽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나오던 그 마을은, 참 보기만 해도 좋았다. 


지은 지 십 년이 조금 넘은 타운하우스 단지였다.

놀이터도 없고 어린이집도 없고 당연히 학교도 없어서 젊은 사람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꽤나 넓은 타운하우스 단지를 하루 종일 걸으면 은발의 할아버지 한 분, 할머니 두어 분 마주칠 뿐이었다.


그야말로 실버타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달까.


타운하우스 건물은 4층짜리였는데, 1층 세대는 아담한 마당을 쓸 수 있었고 꼭대기 4층 세대는 박공지붕에 다락방이 딸려 있었다.


강아지와 단 둘이 살던 나는 고민 끝에 1층을 선택했다.


이사를 하면 라벤더도 심고 국화와 과꽃도 심어야지 했다.

한 번도 해본 일이 아니어서 둘째 딸 사는 걸 보러 들른 아빠를 졸라 꽃밭을 만들었다.



조그만 꽃삽 하나 들고 꽃밭을 만드느라 지렁이를 그날 서른 마리쯤은 본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들꽃 씨앗들이 제멋대로 꽃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꽃들은 이렇게나 예쁘고 흔했다




그래서 나는 봄부터 여름을 지내는 내내 호사를 누렸다.

마당에 핀 꽃들 몇 송이씩 꺾어와 집안 아무 데나 놓아두어도 좋았으니 말이다.


어느 날은 이렇게,


어느 날은 또 이렇게,


어느 날은 이렇게까지도.






브런치를 연 건, 내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래, 기록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 마을에 살던 가을날, 내가 그렇게도 예뻐하던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이파리도 다 떨어지고 까치밥 홍시 하나 달랑 남은 감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나. 
농담 같은 감나무.




내가 그동안 무얼 놓치고 있었나.

감나무를 발견한 그날 오후, 나는 그 생각을 오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새삼 둘러본 내 집.


친구에게 선물 받은 양은냄비를 알록달록 칠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어느새 해 잘 드는 베란다에서 청경채와 루꼴라가 파랗게 올라와 있었다. 생수병을 잘라 아크릴 물감을 칠해 만든 조그만 화분에서도 비타민과 고수, 근대가 쑥쑥 자랐다. 


설마 씨앗들이 다 싹을 틔우겠어, 하면서 아낌없이 훌훌 뿌렸더니 야단이 난 거였다. 어딘가로 옮겨 심어야 할 텐데. 파전을 부쳐먹고 쪽파 뿌리만 물에 꽂아두었더니 그 녀석들마저 자랐다. 이틀 더 두고 보면 파전 한 장 더 먹겠군, 나는 그러면서 혼자 웃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가을을 지나고 있는 걸까



그 시절의 가을은 돌이켜보아도 예쁘다.

지금 이 가을도 시간이 지나 보아야 예뻤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있을까.


아무튼 다시, 기록이다.

한 번 두고 보자고.

이 가을이 어찌 기억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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