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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일곱 살] ep.93_호들갑쟁이 엄마



내가 하도 작은 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 우주, 우리 아기 타령을 했더니 내 지인들은 우주가 진짜 똑똑하다 생각했나 보다. 얼마 전에도 친구 하나가 "아니, 우주는 어떻게 그렇게 똘똘해? 어떻게 키운 거야?" 하길래 너무 낯 뜨거워서 "아니야! 내가 그냥 애기 자랑할 데가 없어서 너희들 붙잡고 흰소리 하는 거야!” 그랬다. 돌아보니 정말 민망했다.      


내일은 친구가 우주랑 동갑내기 딸을 데리고 우리 집엘 오는데 내게 그랬다.      


"우주가 너무 똑똑해서 레아랑 노는 거 유치해서 싫다고 할까 봐 진짜 걱정이야."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뻥친 거야..... 우주 안 똑똑해. 미안해."      


이제 우주 내일이면 큰일났다. 다 들켰다, 이제.     


그런데 말이다.

나는 우주가 내 앞에서 잘난 척하고 내가 물개박수 쳐주는 게 그렇게나 즐겁다. 신이 막 난다. 물론 우주는 내가 그러니까 자기가 정말 잘난 줄 알고 아무데서나 잘난 척을 막 하는데, 예를 들자면 일곱 살이나 먹은 게 자기는 영어를 정말 잘한다며, 사람들 앞에서 ABC송을 부른다. 고작 ABC송. 그럴 때면 나는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그런 부작용 빼고는 우주가 우쭐우쭐 으스대며 다니는 게 진짜 귀엽고 좋다. 예쁘잖아. 웃기고.     

며칠 전엔 식탁에서 밥을 먹다 나에게 말했다.     


우주: 엄마! 나 지금 막.... 뭔가 알게 된 거 같아.

나: 뭐?

우주: 이거 식탁.... 식탁이 왜 식탁인지 알게 됐어.

나: 식탁이 왜?

우주: 음식 할 때 식. 그리고 탁자 할 때 탁. 그래서 식탁인 거 같애.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 어떻게 반응할까 새삼 궁금하다. 

나는 어떻게 반응하냐면, 일단 숟가락을 식탁에 탕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잠시 바들바들 떨어준다. 그리고는 천천히 묻는다.     


나: 너.... 정말 내 딸..... 맞아? 어떻게 내 딸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엄마 지금 소름 돋았어. 너무 놀랐어. 그걸 너 혼자 깨달았단 말이야? 진짜루? 누가 알려준 거 아니고? 정말 너 혼자?     


그러면 우주는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밥 먹다 말고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식탁에 식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자랑하고,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엄마, 내가 식탁이 식탁인 이유를 맞혀서 진짜루 놀랬어? 일곱 살이 그걸 아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엄마는 내가 식탁이 식탁인 이유를 알아서 그렇게 기뻤어?" 열 번쯤 묻는다.      


물론 우주는 하도 내가 예쁘다 예쁘다, 하고 하도 오냐오냐, 해서 오만방자 오만불손하다. 제 방에서 책을 읽겠다고 하길래 나도 같이 읽자고, 나는 네 침대에 앉아 읽겠다 했더니 "엄마.... 진짜 미안한데, 나는 책은 혼자 읽고 싶어. 혼자 집중하고 싶어. 엄마는 소파에서 읽으면 안 돼?" 하기도 했다. 진짜로 상처 받았다, 나는.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려고 일부러 우쭈쭈하는 건 아니고, 나의 우쭈쭈는 내 성격 때문이지만 나는 아마 오랫동안 기어이 이렇게 살게 될 거 같다. 그러니 늦둥이 키우는 엄마의 호들갑과 주책에 대해 그대들이 좀 이해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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