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지난주 목요일 밤 온라인 커피챗을 열었습니다. [신춘문예 준비하는 법]. [단편소설 쓰는 법] 커피챗에 참여했던 분들이 많이들 다시 와주었고, 한 시간 반 예정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을 훌쩍 넘겨 두 시간 반. 나누어주었던 강의 노트를 여기에도 정리해 봅니다.
신춘문예 응모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신문사마다 제시하는 원고 분량이 다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70매에서 80매 내외입니다. 응모자들은 소심하죠? 꼭 물어봅니다. 82매 썼는데 줄여야 하나요? '내외'니까 큰 상관은 없습니다만 어떤 출판사에선 제시 분량의 10%를 넘어갈 경우 탈락 처리한다는 조항도 있더라고요. 그러니 꼭 응모하는 신문사의 요강을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서 발목을 잡힐 수도 있으니 말이죠.
사실 80매를 넘어가는 원고는 길게 느껴집니다. 요즘 한국의 단편은 점점 짧아지는 추세거든요. 그리고 한국의 단편이 다른 나라 작품에 비해 그동안 길었습니다. 단편의 길이가 짧아지는 건 시대의 흐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도 작가들에게 단편을 청탁할 땐 70매를 절대 넘기지 말아 달라고 하는 편입니다. 내년 초에 출간될 앤솔러지엔 열네 분의 작가들 모두에게 50매씩을 청탁한걸요. 물론 아직 문예지 신인상이나 신춘문예 응모작은 80매 내외가 기본입니다.
제시한 편수보다 더 많이 보내지 마세요.
일단 말을 잘 들읍시다.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모두 수작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습니다. 독보적인 작품이라 거리낌 없이 바로 당선작으로 고를 수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뭔가 아리까리한 경우 함께 보낸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 있어요. 그럴 때 나머지 작품이 영 허접하다면 "에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 편만 보내세요. 나머지 작품은 다른 신문사에 보내면 됩니다.
중복 투고는 절대 금지
굉장히 당연한 거죠? 그런데도 굳이 이러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시 모르잖아, 당선의 확률을 높이는 게 낫지 않겠어? 아뇨, 낫지 않아요. 하지 마세요.
재등단 금지는 이제 기본입니다.
옛날엔 등단 이력 '세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재등단이 자유롭기도 했습니다. 지방지로 등단했다가 다시 중앙지로 등단을 했죠. 하지만 이제 재등단 금지는 기본 룰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법은 아니니까요. 그저 규칙일 뿐이지.
몇 년 전 저는 한 지방지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어요. 으악, 너무 잘 썼어. 뽑으면서도 지방지로 등단하기엔 좀 아깝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당선자는 지방지로 등단을 하다 보니 훗날 청탁이 없어 좀 애를 먹었습니다. 몇 년 후 한 문예지 신인상에 다시 응모를 했고 당선 연락을 받았지만 이전 등단 이력이 문제가 되어 당선 취소가 되었습니다. 신춘문예뿐 아니라 문예지도 재등단을 금지합니다.
가르쳤던 학생 한 명은 지방지로 당선했으나 역시 고민을 하다 중앙지에 다시 응모를 했습니다. 당선 연락을 받았어요. 지레 겁을 먹고 실은 지방지 당선 이력이 있다, 고백했는데 그쪽에서 잠시 의논을 하더니 그대로 당선 확정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어요.
이전 등단 이력이 있는데 어떤 이는 당선 취소가 되고, 어떤 이는 그냥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재등단은 원칙적으로 안 되는 거라는 것, 왜 나는 안 되냐고 따질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 알고 계셔야 합니다.
미발표작이어야 합니다.
그럼 어디까지가 미발표작이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죠. SNS에 올린 것도 안 되느냐, 졸업작품집에 실린 것도 안 되느냐, 질문이 쏟아집니다. 이것 역시 '법'이 아니에요. 규칙일 뿐입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요.
몇 년 전 한 신문사에서 시 당선자를 냈습니다. 1월 1일 자 신문에도 실렸죠. 그런데 표절 시비가 일었습니다. 어느 백일장 당선작과 같은 시라는 것이었어요. 당선자는 펄쩍 뛰었습니다. 표절 아니라고요. 알고 보니 당선자의 친구가 시를 훔쳐다가 백일장에 냈던 것이었어요(미친;;;). 당선자는 표절 혐의를 무사히 벗었으나 신문사에서는 그의 당선을 취소했습니다. 혐의가 없는데 왜 취소했을까요? 바로 '미발표작이어야 한다'는 규칙에 어긋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일장 수상작으로 발표되었으니까요. 어이없죠? 시를 훔친 친구는 당선자에게 맞아 죽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리합니다.
한 편 보내라면 한 편 보내고, 80매 내외라면 80매 맞추어서 보내고, 응모하려면 어디에다 미리 내보이지 말고, 재등단은 안 되는 것이니 미련 갖지 맙시다.
신춘문예는 올드하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신춘문예는 등단의 관문이자, 한 해 한국문학의 감각을 시험하는 실험실 같은 존재입니다.
요즘 작가들의 경향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예요. 가장 냉철한 동시대성을 골라냅니다. 여전히 스타가 탄생하는 한국 최고 등단 산실이죠. 성해나도 이유리도 신춘문예가 선택한 작가입니다. 올드하긴요. 오해하지 마세요. 2025년 신춘문예에서 가장 화제가 된 길란 작가는 아마 몇 년 내 한국문학을 다 씹어먹을 거라는 데 제 가느다란(!)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소설이 당선작이 될 수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이게 가장 궁금들 하시겠죠.
훌륭한 단편이어야 합니다. 네, 빤한 소리죠. 그렇다면 어떤 게 훌륭한 단편인지 살펴봅시다. 응당 그래야죠. 훌륭한 단편이란 이 기본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인물은 무언가를 원하거나 잃은 상태입니다. '결핍'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인물은 그 결핍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자각하고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죠. 세상은 주인공의 욕망을 시험합니다. 결핍이 부른 욕망이에요. 주인공은 그 시련을 겪으며 변화합니다. 결핍과 시련과 변화. 아직은 무슨 소린가 싶을 수도 있어요. 더 나아가 봅시다.
이 결핍, 시련, 변화 구조를 탄탄히 만들기 위해서 작가는 소설을 통해 전할 [핵심질문]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센트럴 퀘스천, 핵심질문. 우리는 줄여서 CQ라고 부릅시다.
CQ는 바로 이것,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에요. 소설이란 작가가 핵심질문을 제시하고, 그것에 답하는 것입니다. 모든 소설은 핵심질문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빠졌다면 그건 그저 이야기, 스토리에 불과한 것이에요. 네이트판에 올라가는 썰과 다를 바 없는 것이죠. CQ는 결국 소설의 주제가 됩니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소설에 꼭 주제가 있어야 하나요?
닫힌 결말 말고, 열린 결말은 안 되나요?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독자가 그 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소설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네이트판 썰을 읽는 게 아니니까요. 작가가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주인공이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서 끝내 어떤 변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결말이 지어진 것입니다. 닫힌 결말, 열린 결말에 대해 오해하지 마세요. 주인공이 독자를 깜짝 놀랠 만한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주인공이 변화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결정을 하지 않은 것도 주인공이 선택한 것입니다. 변화가 있었으니 선택이 있었던 거예요. 결말은 이미 지어진 것입니다.
잘 만든 핵심질문의 예를 들어보죠.
조만간 한국문학을 씹어먹게 되리라 확신하는 길란 작가의 소설입니다.
스토리보드는 이렇습니다.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거주자 사이의 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설입니다. 중산층 진입이 불가능할 때, 차라리 복지 수급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시스템의 모순을 그렸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끊임없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야 하는 현실에 그야말로 잔소름이 돋습니다.
길란 작가는 이 에피소드에서 어떤 핵심질문을 만들었을까요?
현재 한국 사회의 주거 불평등을 다루는 우화
가난이 어떻게 사람을 비틀어놓는지에 대한 잔인한 관찰 기록
"더럽고 치졸하고 비굴하게 버텨줄게."
주인공의 이 말은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에서 존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자,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주장하겠다는 저항입니다.
집을 갖기 위해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더러워져야 하는 사회가 정상일까?
결국 길란 작가의 소설에서 우리는 이런 핵심질문(CQ)을 읽어내게 됩니다.
훌륭한 단편소설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 질문(핵심질문)이 곧 소설의 주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독자입니다.
독자가 그 답을 오래 생각할 때 "여운"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아, 이렇게 길어지면 안 되는데.... [신춘문예 준비하는 법]은 이제 시작인데.
아무래도 어마어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일단 여기서 끝내고 내일 계속하지요.
폴앤니나 북스쿨 커피챗 공지는 아래 링크에 늘 붙여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