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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2. 2022

[너는 나의 우주] ep.5_옷 처분



나는 지금 미국에서 산 10달러짜리 바나나리퍼블릭 펑퍼짐한 원피스에다 13000원짜리 임부용 레깅스를 입고 있다. 당분간 이런 옷 외에는 다른 것들이 필요 없다. 슬림한 재킷도 짤막한 스커트도 하늘하늘한 실크원피스도 봄 니트도 필요 없다.      


나는 한 가지 스타일의 옷에 꽂히면 똑같은 디자인으로 색상만 달리 해 막 사들이기도 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I 브랜드의 구멍 숭숭 뚫린 티셔츠를 너무 좋아해 그걸 다섯 벌이나 가지고 있다. 버건디, 화이트, 카키, 그레이, 또 한 장의 화이트 더, 그렇게 말이다. 신혼여행을 갈 때 챙겨갔지만 안 예뻤다. 타이트한 옷은 아니지만 그걸 입은 나는 상체비만 여자 같았다. 그러니 그것도 필요 없다. 다섯 벌 모두 다. 


M 브랜드의 미니스커트는 진짜 예쁘다. 너무 짧아서 이제 내 나이에 입기가 좀 뭣하지만 그래도 나는 몇 년간 그 스커트를 애지중지했다. 베이지색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얼마 후 블랙도 또 샀다. 정말 예뻐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며칠 전 나에게 잔뜩 토라져서 한동안 우리는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기 전에 카톡으로 "아직도 화남?" 물었지만 대꾸도 없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참고: 동생은 사투리를 쓰고, 나는 화날 때만 사투리를 쓴다)     


동생     왜? 전화 왜 했는데?

나        아직도 삐졌어?

동생     왜! 할 말 있으면 빨리 해라. 바쁘다.

나        옷장 정리하는데, 내가 안 입는 거 보내면 입을래?

동생     야!

나        왜?

동생     빨리 보내라, 가시나. ㅋㅋㅋㅋㅋ (진짜 이렇게 웃었다!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빨리빨리!

나        내 오렌지색 원피스랑 까만 거랑 보내주면 깨끗하게 잘  입고 줄 거야?

동생     내 진짜 옷 깨끗하게 입는 거 모르나? 드라이 싹 해서 나 중에 줄게.

나       내가 B 재킷 아끼는 거 알지?

동생     안다, 안다. 조심조심 입을게.

나        I 스팽글 점퍼, 그것도?

동생     니 스팽글 달리고 그런 건 아예 몬 입는다. 애기 얼굴 다  긁힌다.

나       내가 그거 몇 달 기다려서 산 건지 알지?

동생    아껴 입는대니까!

나       아…… 나 진짜 이건 못 주겠는데.

동생    뭔데?

나       나 한 번 입었는데.

동생    뭐? 뭐 말하는데?

나       T 코트.

동생     꺅!

나       그건 내가 그냥 입을까?

동생     뭔 소리 하노? 애기가 다 잡아뜯는다. 옷 다 망가지고 울 지 마라.

나        한 번 입어서.

동생     한 번이고 나발이고 안 된다, 니는.

나        미니웅 두고 나갈 때 입으면.

동생     겨울이면 애기 백일인데, 백일 된 애를 두고 어딜 나가는 데, 니가?

나       자주 입지 마. 아껴 입어.

동생     알았다. 그리고 니, 까만 코트 내한테 보내라.

나       그건 안 돼. 

동생    그거 무거워서 애기띠 하고 몬 입는다. 니는 그냥 잠바  입어라.

나       싫어.

동생     내가 그때 보니까 그 코트 억시 무겁더라. 니 몬 입는다.

나       싫어. 

동생    애 키울 땐 예쁜 옷 입으면 다 망가진다. 다 늘어나고.

나       그럼 내 티들도 다 보내?

동생    그래애! 3년 후에 내 싹 드라이해가 다시 주께. 

나       벌써 챙긴 거만 캐리어 두 갠데. 박스도 한 개 있고.

동생    내 올라가까? 가지러 가까?

나       엄마 오면 가져가라 할 건데.

동생     야! 엄마 뭐라 한다. 니꺼 다 뺏아간다고. 내가 가께.     


요거트에 불린 오트밀을 퍼먹으며 생각했다. 정말로 3년 동안 나는 예쁜 옷을 입을 일이 없을까. 아니, 양보하고 양보해서 2년. 요즘 아기엄마들은 다 예쁘게 잘 입고 다니던데. 괜히 주는 건가. 미니웅과 만나고 난 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해서 얼른 살 빼고 다시 입어야 하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오트밀을 먹었다. 배가 불러도 임부용 레깅스는 안 불편하다. 그러니 동생에게 주는 옷도 별로 안 아까워졌다. 3년 후에, 아니 2년 후에 잘 찾아와야지. 다 베이직한 디자인들이라 유행이 지나서 못 입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래, 그럴 거야. 나는 내일 임부용 레깅스나 더 주문해야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 오트밀도 다시 불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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