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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너는 나의 우주] ep.13_담임선생님



조리원 방에서 뒹굴뒹굴 혼자 놀다가 누군가 노크를 하길래 간식 가져다주러 온 아주머니인 줄 알고 문을 열었더니,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꺅꺅 소리를 질렀다.   

  

"뭐 오가닉 옷이란다. 사놓고나이 머시매 옷 같애서 쫌 그런데 고마 대충 입히라. 숙제 다 해노니 맘 편하나. 아이고야, 나는 안즉도 명절 때면 니 시집 안 가나, 그래 혼자 살 끼가, 그런 소리 듣는다. 니는 인제 안 듣잖아. 마 속 시끄럽다. 다음 명절 때부턴 어디 나가뿌야지 이래가 몬 살겠다."     


선생님은 이제 예순을 앞둔 노처녀다. 요가원에 가던 길에 들렀단다. 

나는 분홍 노랑 그림들이 마구 그려진 조리원복에다 세수도 안 한 꼬락서니로 선생님과 한참 수다를 나눴다.     

"미은 샘한테 전화해서 같이 갈래? 물었두만 며칠 후에 따로 온단다. (미은 선생님은 내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개안타. 아 낳고 이쁜 사람이 어딨노. 벨걱정을 다하네. 이래 보니 좋네. 쪼매 일찍 올걸. 애기 얼굴 보게. 신생아실 문 닫았더라. 그라고 니는 카톡 확인 쫌 해라. 방 호수 물어본다고 카톡 계속 보내도 확인도 안 하고야."     


어떤 선생님은 돌아가셨고 어떤 선생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단다. 또 어떤 선생님은 변함없고 어떤 선생님은 여태 성질이 고약하단다. 아이들이 예전만큼 순진하지 않아서 학교생활이 덜 재미있고, 대신 첼로를 배우고 하루에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단다.

      

아는 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향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어디 나갈 땐 비비크림이라도 찍어 발라야겠다. 하긴 미니웅이 태어나기 전 이것저것 좀 사겠다고 나갔던 백화점에서 나는 중학교 동창을 몇 명이나 마주쳤다. 물론 동창이라는 건 알겠지만 이름은 전혀 떠오르지 않아 인사도 나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도 나를 알아보아서 “아니, 이 나이에 만삭이라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흘금거리며 지나쳤다. 인사라도 할걸 그랬다. 얘기를 하다 보면 이름이야 금방 떠올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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