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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너는 나의 우주] ep.17_하찮지 않은데



갓난쟁이를 키우지만,

온종일 아기를 보다가 겨우 재우고 깊은 밤이 되어도

머리통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껴본 적이

아직 없다.    

 

그건 일을 끝내고 난 후에만,

정말 일,

말 그대로 일,

밥을 버는 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른함이었던 거다.     


아기를 맡기고 나와

바짝 집중해서 일했다.     

고작 몇 시간.

정말 우스울 정도의 몇 시간.     


그러고 나니 배가 고프다.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밥을 벌었으니까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은

참 요상하고 껄끄러운 기분이다.     


요즘은 내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아기 밥을 먹이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하고

커피를 끓이고

아기를 보고.     


그 와중에 배가 고프면 화가 났는데.     

나는 그러니까,

내 일상을 스스로 하찮게 여겼었나 보다.     

그래서 좀 쓸쓸하고 외로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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