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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네 살] ep.28_울지 마



우주는 하루 동안 세 번 울었다.     


1.

놀이터에 그네를 타러 갔지만 이미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한참이 지나 우주 차례가 되었지만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냉큼 올라타고 말았다. 우주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녁이 되어 내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나         아까 우주 놀이터에서 왜 울었어?

우주      우주가 그네를 타고 싶었떠.

나         그런데?

우주      우주가, 그네를 탈라고 했는데 오빠가 그네를 탔어. 

            우주가 기다리는데. 우주는 기다렸는데 오빠가 먼저 그네를  탔어. 우주는 기다렸는데.

나         그랬구나.

우주      그래서, 우주가 똑땅해떠.

나         속상했어?

우주      응, 우주가 많이 똑땅해떠.

나         근데 우주, 속상하단 말도 알아?

우주      응, 알아. 우주가 똑땅했거든.     


똑땅하단 말을 해서 엄마가 화들짝 기뻐한단 걸 눈치챈 우주는 저녁 내내 똑땅하단 말을 반복했다. 별의별 일들이 다 똑땅했다.     


2.

우주가 딴 델 보며 걷다가 식탁 의자에 얼굴을 콩 박았다. 입술 안쪽이 터져버렸다. 처음엔 이를 다친 줄 알고 기겁했는데 다행히 이에 부딪혀 입술만 터졌다. 마침 나는 입병이 나서 우주를 붙들고 엄마 아퍼, 엄마 아퍼, 내가 더 칭얼거리던 참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우주 입술을 보곤 내 엄살이 뚝 멈췄다. 한참을 울고 난 우주는 내가 입안에 알보칠을 바르는 걸 유심히 쳐다보았다. 물론 나는 알보칠을 바르며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다. 우주는 제 아빠에게 그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빠. 엄마가 입이 아야아야 해서 이케이케 약을 발라떠. 이케이케. 근데 이케이케 약을 바르는데 엄마가 으앙 울어떠. 아야아야 하니까 으앙 울어떠. 우주도 입이 아야아야 했는데 우주는 안 울어떠. 근데 엄마는 울어떠. 우주는 안 울었는데.”     


뭔가 억울했지만 나는 참았다.     


3.

마지막으로 운 건 밤 11시였다. 

9시가되어서 이제 그만 자자고 침대에 누웠지만 우주는 11시까지 자지 않고 노래를 들었고, 노래를 불렀고, 내게 노래를 부르라 시켰고, 율동도 시켰고, 저도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11시가 되어 내게 말했다.


“엄마. 배고파.”


어지간했으면 우유라도 한 잔 줬을 테지만 우주는 입술 안쪽을 다쳤고 그래서 양치도 겨우겨우 살살 마친 터였다. 무얼 또 먹으면 양치를 어찌 다시 한단 말인가. 입술은 바깥쪽까지 새카맣게 피멍이 올라와 있었다.


“우주야. 밤엔 자야지. 지금 또 먹으면 양치해야 해. 우주 입술 아프잖아. 그리고 너 배 안 고파. 니가 오늘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알아?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었어.”


으애애애애애애앵. 

어쩌면 그리 서럽게 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엄마가 밥을 안 준다고. 그렇게 우주는 한참을 울었다. 몇 번이나 그냥 빵이라도 한 개 먹여 재울까 고민했지만 정말 우주는 침대에 눕기 직전까지 끝도 없이 먹었다. 배가 고플 리가 없었다. 역시나 우주는 제 아빠에게 이 일에 대해 고자질을 했다.


“아빠. 우주 울어떠. 우주는 배가 고팠는데, 이케이케 (몸을 뒤틀며) 배가 고팠는데 엄마가 밥을 안 줬떠. 빵도 안 줬떠. 우유도 안 줬떠. 그래서 우주가 많이 울어떠. 엄마가 밥을 안 줘서. 우주는 배가 고팠떠. 그래서 우주 똑땅해서 막 울어떠. 이케이케 울어떠.”     


정말 긴 하루였다. 

앞으로 우주는 얼마나 고자질을 해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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