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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네 살] ep.44_엄마가 미안해



나는 우주와 첫 조우를 한 후 몇 번이나 기절할 뻔했다. 

기껏 사준 장난감을 다 외면한 채 고작 리모컨을 처음 입에 넣고 빵긋빵긋 웃던 날도 쓰러질 뻔했고 보행기를 하도 밀고 다녀 아기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인 걸 본 날에는 우어우어 소리를 쳤다. 아기 자랑하는 친구들을 보며 휴, 세상 태어나 잘한 일이라곤 애 낳은 거밖에 없니? 시건방을 떨던 내가 아무 데나 전화를 걸어 자랑을 하다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별수 없이 수긍했다. “응, 내가 젤 잘한 게 우주 낳은 일 같아. 그땐 미안.” 그러면 순둥순둥 한 친구들이 더 욕도 못 하고 내 터무니없는 아기 자랑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내가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문젯거리가 많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늘 걸린 건 우주는 또래 친구들보다 엄마 아빠와 10년쯤은 일찍 헤어질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생각을 하면 늘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좀 오래 끼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어쩔 수 없었고 집 앞 관리동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후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다른 워킹맘들보다는 시간 조절이 가능하긴 했으나 아무리 빨리 하원하러 뛰어보아야 오후 4시 반, 5시였다. 해 짧은 계절이 되자 마음은 더 급해졌고 나는 지하철 안에서 매일 발을 굴렀다. 붉은 하늘을 등진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엔 아가들 신발이 몇 켤레 남지 않았고 선생님들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선생님, 우주가 맨 꽁지 아니죠?” 


나는 몇 번이나 물었다. 


“아녜요, 어머니. 셋이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러는데도 그 말이 못 미더워 교실 안을 자꾸 흘금거렸다. 


어느 아침, 우주를 들여보내고 나는 KTX를 타러 갔다. 전날 어린이집 알림장에는 분명 참관수업 공지가 떠 있었다. 아이들 요리 수업을 한다는 거였다. 나는 지방 신춘문예 심사 일정이 있어 내려가야 했고 우주 아빠도 바빴다. 나는 참관수업과 심사료 사이에서 잠깐 고민했지만 맞벌이 부부들도 많으니 모두 참석하는 건 아닐 거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구에 도착해 심사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안 오세요? 어쩌죠, 우주만 혼자인데.”


가슴이 덜컥거렸다. 

다행히 같은 반 엄마가 우주까지 살뜰히 챙겨준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어 인사를 드리니 우주 잘 놀았다고, 걱정 말라하는데 나는 그만 코끝이 빨개지고 말았다. 새침한 우주가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했을까 마음이 먹먹해졌다. 괜히 내려왔다. 그냥 어린이집 갈걸. 심사료 그게 뭐라고.  


나중에야 친구는 나를 나무랐다.


“그런 데 안 가면 어떡해? 선생님이 오라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지. 너, 엄마들이 왜 회사 관두는지 몰라? 워킹맘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인생 그렇게 안 쉽다, 너?”


고작 참관수업 때문에 나는 그날 질펀하게 울어버렸다. 

도대체 육아에서 죄책감을 빼고 나면 나머지가 있기는 한 건지 으헝헝, 나이 많고 아는 거 없는 워킹맘 나는 공연히 서러워져 밤이 다 새는 줄도 몰랐다. 


아침마다 아이 손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들고뛰는 엄마들을 보면 마음이 쿵쿵거린다. 저 엄마도 비 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막히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겠지. 내 마음이 뛴다고 버스가 따라 뛰는 것도 아닌데. 나처럼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신발장부터 보겠지. 가끔 그런 엄마들 보면 커피 한 잔 사주고 싶지만 그것도 오지랖이니 일단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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