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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다섯 살] ep.49_기적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가볍게 대답한다.


“생각보단 수월해서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진심이다. 

우주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수월하다. 별 부침이 없다.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별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소소한 기쁨이 참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별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건,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라 정말이지 기적적인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건 기적적인 일이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마침 미세먼지도 없고 날도 화창해서 세발자전거를 끌고 놀이터에 나갔다. 우주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이 오르르 놀이터에 다 모였다. 세상에나, 우리 우주가 이렇게 잘 노는 아이였구나 싶었다. 반에서 덩치가 제일 큰 우주는, 12월생이라 키가 제일 작은 친구를 시소에 앉혀주고, 넘어질까 봐 잡아주고, 제 세발자전거를 타려는 세 살 아기를 막아섰다.


“너는 너무 작아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하단 말이야!”


아기가 울자 우주도 같이 울었다.


“위험하다고! 위험해서 그러는 거란 말이야!”


준영이는 잘생겨서 좋고 3월 들어 어린이집을 떠나 유치원으로 옮긴 태현이를 다시 만나 너무 반가운 마음에 꼭 안아줬고 수아의 노란 태권도복이 부러워 몇 번 만져보았다. 범찬이랑 범준이 쌍둥이 형제들은 벌써 선 채로 그네를 탈 줄 알아서 그게 너무 멋지고 처음 본 동네 아기는 다리가 통통해서 예뻐 죽겠단다. 친구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요이 땅, 외치며 달리기 시합도 했다. 놀이터 주변을 다섯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그렇게 세 시간을 뛰어놀았다.


다음 주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테니 나에게 토끼케이크를 사놓으라고, 거듭 약속을 받고서야 우주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다이소에서 사온 봉선화 씨앗이 싹을 틔우긴 했지만 콩나물처럼 키만 클 뿐 아무래도 위태롭다. 봉선화가 죽으면 우주가 울지도 모르는데. 대신 선물 받은 프리지아를 화병에 꽂았다. 노란 꽃이 예쁘다고 몇 번이나 향기를 맡았다. 양쪽 발에 굿나잇 뽀뽀를 한 번씩 해달라 하고선 우주는 잠이 들었다. 아, 자기 전에 내일의 저녁 메뉴를 부탁했다.


“엄마, 내일은 손으로 뜯어먹는 고기 해줘.”


손으로 뜯어먹는 고기란, 등갈비다. 

에어프라이어를 사길 잘했지. 오븐보다 훨씬 맛있게 구워진다.     


문득, 이 기적들 속에서 내가 몹시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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