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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여섯 살] ep.61_엄마랑 닮았어



우주와 만두를 빚었다. 친구가 만두소도 만들어주고 만두피도 사다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우주를 위한 친구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우주는 작은 손바닥에 만두피를 얹고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퍼담으며 진정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     엄마…… 난 꿈에도 생각 못 했어. 만두를 이렇게 만드는  줄 몰랐어. 

           만두는 원래 만두인 줄 알았어……

나        꿈에도 생각 못했단 말은 어디서 배웠어?

우주     페파피그.      


나 여섯 살 시절, 우유가 소젖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함을 했었다. 우유는 원래 우유인 줄 알았다. 서울우유 공장에서 만드는 우유. 그런데 알고 보니 우유가 소젖이었다니. 그때의 충격이란.     


그러고 보면 우주 자라는 모습과 나 자라던 모습이 많이 닮아있다. 우주의 지금 장래희망은 화가인데, 나는 여섯 살 시절 장래희망이 만화가였다. 나도 매일 아빠에게 편지를 썼고 우주는 매일 나와 제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어제는 ‘우주가 엄마를 사랑해’라고 쓰려 했으나 ‘를’이 너무 어려워 나더러 ‘를’만 대신 써달라고 했다.      

나는 여섯 살 때 밥을 잘 먹지 않는 애였으나 우주는 밥을 너무 잘 먹어, 오늘 아침에도 “우주, 시리얼 먹을래? 만둣국 먹을래?”라는 내 질문에 부스스 잠 깬 얼굴로 “시리얼 많이!”를 외쳤다. 그러고는 시리얼 한 그릇을 다 먹고서 시리얼이 너무 맛이 없었다며 만둣국을 다시 달라고 했다. 나는 별수 없이 만둣국을 끓여주었다. 그 점 빼곤 나와 커가는 과정이 비슷하다. 아, 하나 더 있구나. 우주는 책을 싫어하지. 나는 책벌레였는데. 


부루마불로 덧셈을 배우고 도시 이름을 배운다. 돼지가 주인공인 만화영화 페파피그를 보며 “오늘 하루는 정말 보람찼어.”라던가, “나는 상상력이 부족해.”라는 말도 배웠고 『하늘이의 커다란 식탁』이라는 그림책을 보며 콧줄을 끼고 휠체어를 탄 아기를 놀리는 일이 나쁘단 것도 배웠다. 하루에 젤리를 두 개나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히힝, 귀엽게 웃으면 엄마가 까짓 한 개 더 준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죠리퐁이라는 과자를 어제 처음 먹었고 우유에 말아먹으니 정말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맛이 난다는 것도 알아버리고 말았다. 참, 부루마불 게임을 할 때 제일 화가 나는 건 무인도에 갇히는 건데, 황금열쇠 중 무인도탈출용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걸 제 보물상자(스타벅스 틴케이스)에 고이고이 모셔놓았다. 그걸 두고 “생애 최고의 보물”이라는 말을 썼다. 아마 그것도 페파피그에 나온 말일 테다. 무인도탈출용 황금열쇠 카드가 있는 한 우주는 행복한 여섯 살일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보물상자 틴케이스엔 코를 한 번 푼 거즈 손수건과 딱풀, 그리고 연필깍지가 들어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열 살 때쯤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건 내가 여섯 살 때 그린 첫 번째 만화책 『골목대장 짤미』와 두 번째 만화책 『송이의 시골 여행』을 버린 게 그때이기 때문이다. 그걸 내가 왜 버렸을까. 나는 그때 내 흑역사를 버리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뼈아픈 후회로 남았다. 누런 갱지 연습장 두 권을 빡빡하게 채운 만화책이었는데. 자 대고 칸까지 그려가면서.     


그래서 우주의 스케치북에는 그림 그린 날짜를 하나하나 적어준다. 버리지 않겠다. 이틀에 한 권 스케치북을 몽땅 채워버리는 초스피드 그림쟁이라 조만간 우리 집 수납장은 그것들로 가득 차겠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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