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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여섯 살] ep.76_할아버지의 시계



<할아버지의 시계>라는 노래가 있다. 

열번 들으면 열번 다 눈물이 나는 노래다. 

가사가 이렇다.     


길고 커다란 마루 위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구십 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

아침에 받은 시계란다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주던 시계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구십 년동안 쉬잖고 (똑딱똑딱)

할아버지와 함께 (똑딱똑딱)

이제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할아버지의 커다란 시계는

무엇이든지 알고 있지

예쁜 새색시가 들어오던 그날도

정답게 울리던 그 시계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신 그날 밤

종소리 울리며 그쳤네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우주와 함께 침대에 누웠던 어느 밤,

우주가 <할아버지의 시계>를 틀어달라 했다.    

 

나        엄만 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데.

우주     정말?

나        응.

우주     왜?

나        슬퍼.

우주     노래가 슬퍼?

나        응.

우주     들어보자. 엄마 정말 눈물 나는가.     


우주는 내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도 울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신기했나 보았다.

바이브를 검색해 노래를 틀었다.

꾹 참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나는 정말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니까.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거기서부터 눈물이 팽 도니까 우주 눈이 동그래졌다.

동그란 눈이 우스워 내가 웃었다.


내가 웃으면 우주도 따라 웃어야 하는데

내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우주는 웃지 못했다.

입 꼭 다물고 누운 채 나만 본다.


애기를 놀라게 한 건가,

철없는 엄마 화들짝 놀라서

누운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려고 했는데

우주가 손을 뻗었다.


가만가만 내 눈물을 닦아준다.     


우주     한 번 더 듣자, 엄마.

나        엄마 눈물 나는 거 보니까 웃겨?     


나는 막 웃었다.

우주는 안 웃는다.     


우주     그냥…… 또 들어보자, 엄마.     


우리는 노래를 한 번 더 들었다.

들어도 들어도 이 노래는 슬프다.     


우주     엄마, 난 알 것 같아.

나        뭘?

우주     엄마가 왜 눈물이 나는지.

나        왜? 엄마가 왜 그런 것 같애?

우주     나도 그 노래…… 애기 혼자 두고 엄마가 바다 가는 노래.

나        섬집아기?

우주     그게 섬집아기야?

나        응.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내가 노래를 불러보이자마자 

우주가 손을 들어 내 입을 얼른 막았다.     


우주     하지마. 그 노래 하지마.

나        알았어, 안 할게.

우주     난 그 노래 진짜루 싫어.

나        슬퍼?

우주     몰라. 그냥 싫어. 진짜루 싫어.     


우주는 애기 때부터 그 노래를 진짜 싫어했다.     


우주     그래서 나는 엄마가 할아버지 시계를 들으면 왜 눈물이 나는지 알 거 같애. 

           나 같은 거잖아.

나        응, 그런가 봐.

우주     우리 이제 할아버지 시계 듣지 말자.

나        그래, 듣지 말자.

우주     근데 엄마.

나        응.

우주     구십 년은 진짜 긴 거지?

나        응.

우주     백 년보다 긴 거지?

나        야, 구십이랑 백이랑 뭐가 더 커?

우주     구십.     


어이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백 년보다 구십 년이 긴 게 차라리 낫다.

할아버지의 시계가 구십 년보다 더 길게 흔들렸으면 하니까.     


우주     엄마, 구십 년이 그럼 백백 년보다 더 긴 거야?

나        응. 더 길어.

우주     그럼 백백백백 년보다?

나        응. 더 길어.

우주     와…… 구십 년이 진짜 긴 거구나.     


우리는 노래를 사실 몇 번 더 들었다.

우주는 계속 손가락을 들어 내 눈가를 만졌다.

촉촉해지면 닦아주고 촉촉해지면 닦아주면서.     


세상 최고의 애인이다, 우리 우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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