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투정과 좁은 문
동생이 올 한 해 대여비를 주고 농장 가꾸기를 한 후로 엄마와 난 농약 안 친 건강한 먹거리를 선물 받고 있다. 시간을 내서 농장을 오가며 물도 주고 모종도 심고 씨도 뿌리며 가꿔온 작물도 상추, 쑥갓, 가지, 방울토마토, 오이, 고구마 등 다양하다. 두 고랑을 대여했는데 농장 이용자들 중에 동생은 꽤나 부지런한 농부로 통한다.
사서 먹을 때는 모르겠는데 크기는 좀 작아도 맛은 더 진하고 고소한 듯. 난 돈 주면 마지못해 겨우 할까 저런 일을 어찌 하나 싶은데 동생은 손으로 뭔가 꼼지락 대는 것을 좋아해 재미를 느끼는 모양.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른 밭주인들과도 인사를 하고 얼굴을 트게 되었나 보다. 어느 아저씨가 자신은 이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해서 자신의 밭에 있는 작물들을 뽑아 먹으라고 하셨단다.
오늘 동생이 어머니와 같이 상추 뜯으러 밭에 간 김에 그분 밭의 농작물을 가져왔다. 열무인지 총각무인지... 아니면 같은 건지 그것과 배추를 몇 포기 뽑아왔다. 어머니는 하나하나 칼로 채소를 다듬고 소금에 절인 후 양념을 버무려 김장 아닌 김장 김치를 담그셨다.
어머니께서 곁에 계시니 따로 요리할 필요성도, 관심도 없는 나는 집안일이 참 싫다. 시집가면 청소하고 밥하고 애 키우고 일상의 반복이겠구나 싶어 솔직히 좁은 문으로 들어갈 생각도 희미해진다. 누군가를 먹이고 위하는 일은 고귀하지만 아직까지는 주부의 일에 매력을 못 느낀다. 그래서 결혼이 늦어지나?
아무튼 어머니께서 김치를 담그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니 이게 참 고된 일. 칼로 자르고 다듬고 씻어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거기에다 묻히고 다 중노동이다. 얼마나 힘드실까?
반찬을 먹는 이들은 반찬을 만든 이들에게 깊이 감사해야 하겠구나 싶다.
이거 조금 짜요.
약간 싱거워요.
별로 입에 안 맞아요.
이 따위의 오만불손한 말들은 이제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았으니. 솔직히 돈 주고 사 먹는 게 간편하다 싶다. 그래도 사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가 어렵겠지.
지금까지 하루 세끼, 간식, 도시락 등 다양한 명목으로 그녀가 차려 냈을 수많은 상차림과 정성들이 눈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성경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힘쓰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갈수록 더 편하고 쉬운 길로만 가고 싶으니 이거 큰일이다. 나이 들수록 마음을 지킨다는 게 뭔지, 어려움을 뚫고 나갈 힘을 키우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더 자주, 더 세심히 표현하는 버릇을 들이자. 그리고 어머니께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내는 습관을 만들어보자.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생명을 유지하는데 수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래서 인간은 존귀하다. 그대도, 나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땀과 정성으로 존재하는지도. 그러니 조금은 감사하며 사는 게 마땅한 지도.
내일부터 더 맛있게, 감사히 음식을 마주해야지. 사는 건 먹는 것부터인지도 모르니. 모두들 자알 드시고 자알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