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올 때 글을 쓰는 것
요즘 읽고 싶은 책은 빌리거나 사서 읽는다. 손에서 놓기 힘든 책, '숨결이 바람될 때'.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란을 읽고 폰으로 찰칵! 그건 내가 이 책을 반드시 읽을 거라는 표식이자 다짐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언젠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나만의 의식. 요즘은 나에게 카톡을 보낸다. 읽어야 될 책 목록을 보내거나 참고해야 될 책 제목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에게 톡을 한다.
외국 작가는 잘 외워지지 않아, 작품명만 기억하기 쉬운데. 폴 칼라니티 책은 워낙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아 카스에 저장하다 이름이 각인되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갈 때에도 책장을 넘기고ㅡ난 흔들리는 곳에서는 시력 보호를 위해 독서를 안 하므로ㅡ아침에 눈뜨자마자 그 책을 집어 들고 몇 장 넘겼다. 그러나 점심 때 잠시 눈을 붙여야 했고, 등받이용으로 세워둔 베개를 기울여 쿠션 삼아 베고 누워서 눈 감기 전에도 책을 집어 들었다.
이토록 나에게 실존과 죽음, 삶의 의미를 건네준 소중한 '숨결이 바람될 때'를 구독자인 어느 분의 브런치에서 만났을 때의 놀라움. 물론 그분은 너무 슬퍼 추천하기 꺼려진다고 하셨지만 나는 반대로 꼭 읽고 싶었기에 소중히 만났다.
그 책을 읽기 전엔, 역시 작가 이름은 못 외우겠고, '너무 시끄러운 고독'. 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평생 해온 주인공이 예기치 않게 독서를 통해 교양을 쌓아가고 그렇게 지각의 눈을 떠서 나치 아래 지하 감옥으로 보내진 양서를 자신의 집으로, 머리로 부지런히 옮기게 된다. 그러다 거대한 괴물 같은 기계에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과 기계의 육중함, 책을 책 같이 보지 않는 모습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는 결국 자신이 폐지가 되는 길을 택하는데...
쉽게 말할 수 없었고, 가슴이 저려왔다. 외로워서 더욱 책에 몰두했던 그가 내가 되어 마음이 아프고 불안하고 그리고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내 옆에 툭 던져지듯 놓여진 책은 오늘 읽기 시작한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앞으로 책을 쓰는데 더욱 도움이 되길 바라는 취지에서 페이지를 넘기다, 은유! 이름이 너무 예쁜, 그녀의 일상. 거침없고 속 시원한, 그러나 진실된 글귀에 매료중이다. 부럽고.
그래서 자기 전 누워 두 엄지로 3% 남은 배터리를 엄청나게 의식하며, 부디 폰이 꺼지기 전에 이 글을 발행해야 된다고 혼자서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살아 있어 행복하다, 우선은.
올해는 무슨 수가 있어도 에세이를 완성하자 굳게 다짐하건만 벌써부터 못 미더운 나를 어쩌랴.
이제 잠들어야겠다. 좋은 작가들을 만나는 건 큰 즐거움이자 삶의 활력이다. 브런치 작가님의 방들도 노크하며 못내 읽은 글들을 단숨에 읽어야 하는데... 그것도 우선 담아두고. 지금은 굿나잇!
"글쓰기는 글 보는 눈을 길러주며, 글 보는 안목은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준다. 아울러 남의 말을 알아듣는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해 구체적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 마음 쏠림이 또 다른 글쓰기를 자극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작가는 행하는 자, 느끼는 자, 쓰는 자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언어로 세공하고 두루 나누면서 세상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사람이다. 세상과 많이 부딪치고 아파하고 교감할수록 자기가 거느리는 정서와 감각과 지혜가 많아지는 법이니, 그렇게 글쓰기는 존재의 풍요에 기여한다." (위와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