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뜻밖의 친절에 마음이 열리다!
에피소드 1
"정류장이 더 가까우세요?"
그의 한 마디에 꽁꽁 언 마음과 꽉 막힌 머리가 숨을 쉬는 듯하다. 얼마나 고마운지.
"네?"
다시 한번 되물었다.
"정류장이 더 가까우세요?" 라고 아까와 똑같이 묻는 말에, "여기서 내려주셔도 돼요."하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어주신다. 바로 앞 신호등으로 건너가니 때마침 초록색 불로 바뀌고.
책을 옆에 끼고 우산을 든 채 훈훈한 마음으로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에피소드 2
어젯밤 전화 한 통을 받은 후로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낮잠을 자려고 누워도 그 상태 그대로다. 억울했던 걸까?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와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던
찰나, 학부모님의 전화가 울렸다. 학생이 기초가 부족하여 분절 음운, 즉 모음과 자음 체계를 외우라고 시켰더니 집에 가서 뭐라고 한 모양이다. 고등학생인 그녀는 중학교 개념 지식이 부족하여 문제를 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세세히 공부를 시키려던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된 모양이다.
속상했다. 앞에서는 얼굴색 하나 변치 않고 집에 가서 다른 말을 하다니. 사실 수업료를 받는 나는 학부모님들에게 을의 위치이고 동역자로 같이 길을 걷기엔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다. 믿고 맡겨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돈을 운운하며 제 자식에게 더 신경 써달라고 하실 때는 솔직히 답답하기도. 그만큼 공부를 해줘야, 해내어야, 따라와야 성적도 오르는데. 선생 혼자 떠든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을. 학원에만 집어 넣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어쩌란 말이냐. 그러나 이게 밥벌이다. 때로 참아야 하고 구슬려야 하고 좋게 좋게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하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한 나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에피소드 3
"수학여행 언제 가니?"
"4월 둘째주요."
아이의 말에 보강을 잡으려는데 '방탄 소년단'의 팬인 그녀가 이야기한다.
"수학 여행 전날은 공부하기 싫어요."
내 참, 어쩌란 말이냐. 좀 컸네. 사춘기라서 함부로 일방적으로 말하지도 못한다. 이 부분은 공부 외적인 영역이고 마음과 마음으로 해결해야 되는 부분이다. 좋게 맞춰주기로 했다.
"그럼 그 전에 미리 보강하자. 그러면 되겠지?"
얼굴이 슬며시 펴지는 녀석. 좋은가 보다. 에휴. 선생이 별 수 있나? 져주어야 한다.
에피소드 4
벨을 눌렀다. 기사님이 얼굴로 기색을 살피시는 것 같다. '왜 그러시지?' 의아심이 든다. 짐이 많아 보였나.
마침 고등학교가 마칠 즈음이라 버스에 가득 찬 남학생 사이로 책을 들고 조용히 앉아있던 내가 신경쓰이셨나.
보통 기사님들은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신다. 운전대를 잡으신지 얼마 안 되어 친절이 넘치는 걸까. 갖가지 생각을 다하며 마음이 슬슬 풀어진다. 어젯밤부터 시작되어 과외 가기 전까지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사님의 뜻밖의 친절에 마음이 완전히 녹아든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집에 도착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아 브런치에 접속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봄비가 충만하게 내리는 하루다.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소에서 눈앞에 보이던 물방울 트리들. 나뭇가지 끝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작은 구슬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가방은 팔에 건 채로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사라질 영상들. 남겨두고 싶어서.
에피소드 5
아직도 난 멀었다. 인간이 되려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면 말이다. 어머니가 치과를 다녀오시더니 대뜸 이러신다.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살겠다!"
어머니는 좀처럼 남의 험담이나 뒷말을 하지 않으신다. 가끔 내가 불평섞인 어조로 이야기해도 상대의 입장도 생각하라고 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저런 말을 한다는 건 대단히 화가 난 모양. 무슨 일인고 했더니 치과가 문을 닫았다는 거다. 전에도 한 번 겪은 일이기에 어머니는 더 성이 난 상태. 두 번째라 내가 전화를 걸어서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미리 연락을 해주시던지 오라고 해놓고 이러시면......."
상상초월 반전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다음주 예약을 오늘인줄 착각하고 어머니가 실수를 한 거다. 나는 엄마 말만 듣고 아무 잘못도 없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쏟아붓고. 아이고, 죄송해서 어쩌나. 그걸 못 참아서. 두통의 원인이 된 전화와 내가 건 전화가 대체 뭐가 다른지.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다. 어머니의 마음을 위해 더 오버해서 통화를 했는데 살겠네, 정말!
에피소드 6
낮에 읽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언 20:22)
하늘 아버지, 세상의 빛과 소금은 커녕 이 모양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오늘 제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은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다음부터는 한 번 더 참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노력할게요. 죄송해요.
미안합니다, 선생님! 노여움 푸시고 용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