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하루 지난 오늘

"12까지 배달되나요?"

by 윤작가

"쿵! 쿵! 쿵! 쿵!"

성큼성큼, 듣기에도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며 누군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몇 초가 지난 후 초인종 소리.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나는 얼른 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두 손에서 건네받은 물건을 즐겁게 맞이한 것이지만.


칭칭 감긴 뽁뽁이 위로 주문서 종이가 붙어있다. 물건을 내려놓자마자 전화를 건다. "엄마? 택배 왔어요!" 역시 내 전화가 오리라 예상했던 어머니는 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셨고 1층 마당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인증샷 찍어야 되니까 이것 좀 들고 계세요." 택배물을 받자마자 어리둥절 서 있던 어머니는 한 마디 하신다. "별 걸 다 한다."


사건은 이렇다. 어제 sns에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할인 이벤트를 연다는 공지를 보았다. 작년에 입대를 앞둔 교회 제자와 주일학교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생님과 함께 부산 국제시장 '카페 브릿지'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큰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시무하다 상황이 어려워져 개척을 시작하셨단다. 문화 선교를 하시려다 아는 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실의에 빠질 즈음 호두파이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시는 카페 주인장이 이벤트 공지의 주인공이다. 그곳에서 만난 인연에게 작가 지망생인 나는 큰 도움이 못되고 안타까운 심정만 한가득인 채로 돌아왔다.


재료비 빼고 남는 것도 없을 텐데 단품으로 주문하기도 죄송스러워 그동안은 sns에서 '좋아요'만 연신 누르며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가 어제 호두파이 1판을 사도 배송료가 없고 5판부터는 10% 할인 행사를 한다길래 나도 모르게 귀신에게 홀리듯 주문해버렸다. 동생이 시중에 파는 붉은 카네이션이 아닌 노란 꽃을 사들고 용돈이 든 봉투를 어머니께 지급하고 다녀갔지만, 맏이로서 나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 내심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생활비를 지불하고 있어도 내 벌이가 고만고만하여 늘 제자리걸음이다. 평소 견과류가 좋다고 하시길래 어버이날 선물로 주문해야지 싶어 2판을 부탁하고 바로 입금했다. 그러다 또 생각이 누군가에게로. 작년 서울 여행 때 가이드로 섬겨주었던 선교 단체에 있는 지인이 떠오른 것이다.


스승의 날이면 내 직업이 선생이라고 장미 한 송이나 책으로 격려하고, 명절마다 아버지 안 계시다고 우리 집을 빠짐없이 들리며 위로해주던 고마운 사람인데 그동안 신경도 많이 못 써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통 크게(?) 10% 할인되는 '호두맘 호두파이' 5판을 주문하고 어머니께 드리려 했던 첫 번째 주문은 취소했다.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어머니께는 제가 1판 선물로 드릴게요." 카페 주인의 황송스러운 말씀에 감동이 물결 되어 전해진다.


오전에 사는 동네로 입고되었다는 문자에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어머니 외출 시간이 되어서도 감감무소식. 속이 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결국 문자 후 택배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집에 있긴 한대요. 이 식품을 누구한테 전해야 하는데 그분이 12시에 외출을 해서요."

고맙게도 택배 아저씨가 일을 급하게 처리하여 쿵쾅거리며 12시 15분경 호두파이, 무사히 도착. 12시에 외출했던 어머니께 급히 연락드려 정류소에서 집으로 컴백. 우리는 신나게 가위와 칼로 동그란 피자 모양의 파이를 자르며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거라도 드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통 큰 호두가 알알이 박혀 씹히는 맛이 은은한 호두맘 호두파이. 담백한 아메리카노와 곁들이면 금상첨화!


45000원이라는 내게는 큰돈을 언니에게 기쁘게 지불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 언니가 했던 말 때문이다. "결혼식이 있어 갈 일이 생기면 마음껏 축복해줘. 그럼 그 축복이 나에게도 돌아와." 아직 미혼인 언니는 종종 내게 오디세우스 같은 지략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상대가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지 말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박수를 쳐주면 자신에게도 큰 즐거움이 생길 거라는 단순한 진리. 멘토 노릇을 톡톡히 해주는 언니의 위신을 언니가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 앞에서 세워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 것도 한몫했다.

"호두가 이렇게 많네. 남는 것도 없겠다!"

하시며 고마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호두파이를 드리고 싶은 분은 점점 늘어나고 지갑은 왜 이리 가볍기만 한지. 내 책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어느 날, 고마운 이들에게도 호두파이 아낌없이 쏘자며 혼자 공약을 내걸어 본다! 기대하세요!! ^^



친절한 말은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운 형상을 심어준다.
- 블레즈 파스칼

Kind words produce their own image in men's souls; and a beautiful image it is.
- Blaise Pas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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