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뿅뿅 엄마 밥상

by 윤작가

집밥은 사랑이다

"외모는 석 달, 성격은 삼 년, 요리 솜씨는 평생 간다!"

예전에 유행하던 말이다. 세대와 상관없이 남자들은 무조건 예쁜, 또 예쁜 여자를 선호한다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톱스타들의 파경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 걸 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들의 사랑에 왜 금이 간 걸까?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인권을 강하게 외치며 가사도 육아도 남녀평등을 노래하는 시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들, 가치관이 여전히 우세한 듯 보이니까.


이 나이에도 어머니의 한결같은 걱정은 딸의 끼니이다!


외출했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밥상이다. "다녀와서 이거 먹어라." 한 끼라도 굶으면 죽는 것처럼 어머니의 눈에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인가 보다. 밖에서 약속이 있는 날은 집밥을 먹을 틈이 없는데도 어머니는 자신이 행여 딸의 끼니를 놓칠까 미리 상을 봐 두신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해주신 아침밥을 먹으며 등교를 해서 그런지 나란 인간은 밥에 익숙하다. 우리 집은 햇반을 사놓은 적이 거의 없다.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에 눈을 뜨고 씻자마자 식탁에 앉아 그녀가 미리 차려놓은 아침상을 받는다. 어머니는 일을 시킨 적도 거의 없다. 수저 놓기부터 행주로 식탁 닦기, 밥과 반찬 마련 등 하나에서 열까지 다 손수 차리셨다. 일을 시키지 않으니 먼저 알아서 일을 도와드린 적도 드물다. 당연히 그러는 줄 알고 수많은 집밥을 먹으며 성장했고 살고 있다.


고달픈 상 차리기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일이 노동처럼 느껴졌다. 유아에서 아동, 아동기에서 사춘기, 사춘기에서 청춘, 청춘에서 나이 들어가는 이 순간까지도 주부의 일이 정말 매력적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밥 차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족들을 챙기는 삶. 뭔가 지긋지긋하고 피곤하다. 특히 명절 때 어머니 곁에서 조금만 일을 거들어도 드러눕고 싶은 본능은 식을 줄 모른다. 그 흔한 외식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노름과 경제적 무책임으로 일찍부터 우리 집은 여행은커녕 외식조차 사치였고 일 년에 고기를 먹어본 적도 손가락 꼽을 정도다. 물론 육식을 즐기지 않는 식습관도 크지만 때마다 단백질까지 보충할 재력이 없었다. 다행히도(?) 모성애 강하고 헌신적인 어머니를 만난 덕분에 고기보다 더 건강한 밥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소소한 제철 채소로 만든 겉절이부터 나물 반찬 등 식이섬유를 일 년 내내 섭취한 결과 아직 변비와는 거리가 멀다. 원래 마른 체질이기도 하지만 비만과도 친하지 않다.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은 달걀이다. 어머니는 달걀 프라이, 찜, 계란말이 등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하신다. 자식을 먹이는 게 어머니의 기쁨이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창조의 다른 방편이므로 그 덕은 톡톡히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을 흠모하지도, 따라가고 싶지도 않으니 이걸 어쩌나?

올해 초, 어머니의 설음식 준비 과정. 아주 적지만 나의 수고도 들어갔다.


나는 안 하고 싶어

"엄마, 나는 종노릇 하기 싫어!"

"그럼 시집 못 간다, 결혼은 희생하는 거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발언이다. 음식 만들기보다 책 읽는 게 좋고, 집안일보다 글 쓰는 게 더 매력적인 나는 어머니께 솔직히 일하기 싫다고 말한다. 그것도 집안일. 처음에는 혀를 차시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하신다. 그러다가 끝에는 저 말을 붙이신다. 희생정신없이는 결혼 못 한다고. 결혼은 희생하는 거라고. 무서운 말이고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불붙어 쉽게 빠져들 수 있고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긴 여정에서 작고 큰 문제들을 극복하려면 결국은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다. 평생을 제대로 된 월급봉투 한 번 가져다준 적 없는, 애 먹이는 남편을 두고도 어머니는 자식들 입히고 먹이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셨다.

힘들 때마다 살게 한 것은 그런 어머니의 수고 어린 사랑이었다. 입도 짧고 위도 약해 먹는 것이 시원찮은 딸을 위해 사시사철 정성으로 밥을 먹인 어머니. 큰돈이 없어 매번 비싼 식재료를 살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 몇 천 원 하는 콩나물이나 무, 채소로 김치 담그고 멸치 볶아 손맛 어린 반찬을 곧잘 만들어내는 어머니. 그녀가 희생하길 거부했다면, 우리에게 먹이는 일을 그만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심한 애정 결핍에 누군가에게 심하게 의존하거나 공허한 마음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배를 채웠을지도.


특별한 보양식

새우 마니아인 딸을 위한 힐링 푸드와 곁가지 반찬들


'마니아'란 말은 그리스어로 '광기(狂氣)'를 뜻한다. 광기에는 못 미치지만 나는 새우 마니아다. 비위가 약해 고기를 잘 먹지 못했다. 고기 특유의 냄새에 이미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입 안에서만 씹다 넘어가지 못해 억지로 삼켰던 고기 대신 해물은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복날이 되면 삼계탕 되신 전복이나 새우를 한가득 사 오신다. 그게 우리 집 보양식이다. 아프거나 기운이 빠져있어도 어머니는 해산물을 사 와서 두부 넣은 된장국을 끓이거나 새우만 푹 삶아 마음껏 먹으라고 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수고와 정성, 사랑에 여태 무사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살리려면 잘 먹이는 일이 정말 중요하구나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요리에도 조금씩 관심이 생긴다. 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드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슬쩍 레시피를 파악하려고 눈여겨보기도 하고 들어가는 양념이 뭔지 묻기도 한다.


마음이 담긴 밥상

우선 가족이 건강하려면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 잘 먹으려면 그냥 밥이어선 안 된다. 정말 식상한 말이지만 말 그대로다. 정성과 사랑이 듬뿍 들어간, 마음이 담긴 밥상이어야만 살이 되고 피가 된다. 분위기 좋은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는 한 번 먹으면 끝이다. 자주 생각나지 않는다. 먹어봤다에 만족, 웬만해선 일부러 찾아가서 먹고 또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트 뿅뿅 엄마 밥상은 매일 물 주고 눈길 주며 키우는 화분처럼 가족을 성장시키고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 수고, 나도 언젠간 해야 하겠지. 하는 날도 오겠지. 요즘 새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바로 인증숏!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을 먹기 전에 찍는다.

"얘는 뭐 하냐? 안 먹고."

처음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어느새 적응이 되어 예쁘게 찍으라며 접시까지 신경 쓰는 눈치. 어머니가 노쇠하여 힘이 다 빠지면 그때는 내 차례가 될 테니까. 전복 사 와서 죽 끓이고, 어머니 좋아하는 반찬 열심히 만들어 드시게 해야 하니까. 사실 그런 날이 안 오면 좋겠다. 어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집밥을 계속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그렇게 철부지 딸은 엄마 밥 듬뿍 먹고 이 세상 살아갈 기운 얻고 싶으니.


집밥은 사랑이고, 어머니는 우리 집 건강 관리사! 오늘부터 식사 인사 더 크게 해야지.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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