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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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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Oct 16. 2019

행복의 비결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의 특징

기분 나쁜 시작

만국기 휘날리며 청군 백군으로 나눠 운동장에 고함 소리 가득하던 가을 운동회. 오늘은 마치 '글친' 운동회를 하는 날 같았다. 사실 아침에 어머니와 언성을 높인 탓이라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글 쓰는 동아리 '글친' 모임이 있는 날인데 어머니께서 나를 자극하는 단어를 쓰셨다.

"또 거북이로 바뀌었네. 너는 왜 그렇게 늦니?"

순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동아리 총무를 맡고 있는지라 편의점에 들려 간식까지 준비하고 차 시간 맞춰가려면 이미 늦었다. 어차피 늦었으니 편하게 머리라도 잘 말리자 마음먹고 있는데 저 말씀을 하신다. 순간 비난조로 들려 참지 못하고 말대답을 했다.

"어머니랑 아침 먹으면서 말이 길어지니 그렇죠."

삶의 가장 큰 조력자에게 톡 쏘고 돌아서니 기분도 찜찜, 발걸음도 가볍지 못하고 마음은 온통 헝클어졌다. 프랜차이즈 음료 가게를 하는 작가님이 보온병 지원을 해주신다기에 따로 간식을 챙길 필요가 없어 그나마 제시간에 버스에 탑승. 그때부터 묘한 일이 일어났다.


굳은 얼굴이 펴지다

평소 빈자리를 놓칠까 질서도 무시한 채 정류장 맨 앞에서 종종거린다. 그러다 버스가 서면 재빨리 올라가서 빈자리를 차지하는데 오늘은 의외로 빈자리가 꽤 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 않아 빈자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나이가 조금 있는 듯한 분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 또래보다 연상인 듯 보이는 분 앞에 무심히 자리 잡고 창밖을 보다 변화가 느껴졌다. 그분이 가방을 빼앗듯이 자신의 무릎에 단정히 놓으시는 거다.

"고맙습니다."

순간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리고 감사함에 마음이 살짝 녹는다. 그러나 다른 손에도 가방이 들려 있다.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님의 선물을 담은 가방. 개운치 못한 마음에 어머니께 문자를 넣는다. '버스 안 놓치고 탔어요.' 이 문자를 보시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시겠지. 딸밖에 모르는 엄마가 화난 말투에 적잖이 마음 상하셨으리라 싶어 그게 더 신경 쓰이는 찰나, 낯선 이의 호의에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 버스가 흔들리고 또 다른 여성이 내 몸을 의지하고 앞자리로 오신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를 지지대 삼아 얌전히 의자에 도착. 그런데 기적은 그다음이다. 선물이 담긴 가방을 또 잡아끄신다. 아까보다 더 큰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따스함이 감도는 정이 담겨있다. 마음이 완전히 풀리다 못해 무한감동이다.


숙제는 안 해와도 간식은 챙겨 오는 동료들

아침부터 시끄럽던 마음을 하늘이 읽은 걸까, 그분들이 우울이 스쳐가는 내 표정을 읽으신 걸까? 안쓰러워 보였나? 두 분의 친절에 감사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사실 이 모임에 가는 날마다 고민스럽다. 이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버스 시간 맞추려고 동동거리는 모습에 입은 앞으로 슬쩍 튀어나오고 마음도 뿔이 자주 솟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다음이다.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 도서관에 도착하면 금세 마음이 달라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마냥  마음도 풍랑이 일었다 잔잔했다 하루에도 수시로 요동 그 자체.

이번에 숲 해설사에 합격한 회장님은 고향집 마당에서 들꽃을 꺾어 오셨다. 회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자신의 밭에서 키운 도라지와 메밀묵도 덤으로 내미신다. 사죽당 작가님은 달밤의 정취를 적은 글과 함께 집에서 직접 달인 배와 대추 물을 보약처럼 가져오셨다. 피자두, 사과, 무화과를 말려 모임 간식으로 내미시며, 위생용 비닐장갑을 끼고 차리느라 바쁘시다.

순서를 정해 글을 적어오기로 해놓고 잘 지키지 않는 우리들. 그러나 이런저런 먹거리를 챙겨 오며 서로를 기억하는 정다운 친구들. 나이를 떠나 그분들의 향기에 흠뻑 젖어 혼자 감상에 빠져드는 총무.


행복의 비결

이분들을 바라보며 행복의 비결을 깨우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같이 기뻐하는 것. 자신의 시간과 수고가 들어간 것들을 아낌없이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누어 줄 것을 주시지 붙잡고 있을 것을 주시지 않으신다."라고 했던 테레사 수녀의 명언이 글친 작가님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매번 손해 안 보려고 아등바등 투정만 많은 모자란 총무는 이렇게 반성하며 글을 적는다. 그곳에 가을이 풍성하다. 운동회처럼 다양한 간식 차려놓고 웃는 얼굴로 격려하며 더 잘해보자 다독이는 얼굴들. 손 위에 들꽃이 내려앉았다.


손 위의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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