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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Nov 13. 2019

마지막 잎새

"It is what it is!"

우리들 어둠은

사랑이 되는구나

우리들 어둠은

구원이 되는구나

- 고정희, '서울 사랑-어둠을 위하여' 부분


오늘은 글친 모임이 있는 날이다. 어제 어머니께서 사 오신 쌀과자 한 상자와 청포도 사탕을 간식으로 들고 평소보다 조금 여유 있는 출발을 했다. 내일이 수능일이라 그런지 날씨는 쌀쌀하고 여기저기 병원에서 검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 걱정이 된다. 나의 몸 상태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지인들이 아프다는 말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가는 길,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 앙상한 나뭇가지에 저 혼자 고고하게, 애처로이 달려있다. 붉은 나뭇잎 하나. 마치 O.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다. 그래서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뭔가 마음을 이끈다.


글친 작가님 중에서도 곳곳의 백일장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내와 함께 어느 백일장에 참석한 초계 작가님은 아내가 지은 시를 가져와서 피드백을 해달라고 하신다. 하동 토지문학제에서 시 부문 당선자인 어느 작가님은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자존감이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다른 분들보다 조금 민감한 성향을 지닌 분인데 오늘 가져온 원고에서 소소한 국밥 한 그릇의 가치를 논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피드백들 속에 나의 흥은 여전히 무감각하다. 어느 순간 무뎌진 탓일까? 에너지가 오르지 않는다. 날씨와 기분 탓이려나?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는 붉은 이파리 하나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받은 자색 고구마 농부, 초계 작가님이 콩나물 국밥집에서 점심을 쏘셨다. 다들 맛있게 열심히 드시고 자판기 커피로 마무리를 지을 즈음, 부동산을 하는 맏언니 이럴 작가님이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내가 며칠 전에 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이럴 작가님은 ‘그 남자’ 시리즈로 글친계 소설가로 불린다. 그 남자 시리즈가 뭔가 하니,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온 남자들을 소재로 쓴 글이다. 그런데 보통 상식을 넘는, 사기꾼 부류와 모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모자란 부류가 그들이다. 전에는 납치 준비까지 한 그 남자 때문에 하마터면 이럴 작가님을 다시 보기가 어려울 뻔했다. 집을 살 것처럼 접근하여 몇 푼어치-대략 10만 원 정도-정도를 얻을 심산이었나 본데 3만 원만 가져갔단다. 보기에 멀쩡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하고 산다고 오히려 불쌍하다 하신다. 이런 분이 엔젤(angel)이 아니면 누가 천사일까?


모임에서는 생기를 얻지 못했던 마음이 설마 하면서도 당한 작가님 이야기에 조금씩 움직였다. 마음의 창이 열린 모양이다. 인생길 헤매는 사람들의 어둠조차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It is what it is!”(사는 게 그런 거지!)

이 정신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이분들의 모습에서 눈 크게 뜨고 마음을 붙잡고자 매만진다. 저 잎사귀는 무얼 바라고 홀로 매달려 있는 건지. 언젠가는 바람에 실려 바닥으로 가야 할 텐데. 그래도 누군가는 그 붉은빛에서 희망을 그리고 봄을 기대하겠지. ‘우리들 어둠’이 사랑이, 구원이 되기를! 그런 겨울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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