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소소한 시작, 삶의 길 위에서
2017년, 도서관 공모 사업으로 시작된 '길 위의 인문학, 라이프 텔링 삶을 쓰다' 모임이 햇수로 3년을 맞이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아쉬운 마음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글 쓰는 자생 동아리를 만들었다. 브런치 작가님들께 문의도 하고 회원 자체 의논 결과, 동아리 이름은 '글친'(글 쓰는 친구들)으로 낙점! 전문가의 피드백 없이 보통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글쓰기 동아리이다.
도서관 자체에서 만들어진 공식 동아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매달 도서관에 허락을 구해 스터디룸을 빌렸다. 스터디룸 예약이 다 차면 근처 카페에서 음료수를 시키고 모임을 하기도 했다. 총무인 나는 회비로 음료수와 소소한 과자를 챙기고 돌아가며 글을 써와서 피드백을 한다. 발전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서로의 글에 솔직한 평가를 내리고 혹시 상처 받았을까 눈치도 봤다. 그래도 여태 마음 꺾이지 않고 이런저런 공모전을 준비하기도 하고 숙제 삼아 써온 원고를 읽으며 삶을 나누는 시간이 특별하다.
공모전 돌다리를 두드려 은상을
회원 중 열정이 넘치는 '초계'작가님의 정보력으로 이런저런 공모전에 참여하는 계기가 늘고 있다. 여기 모인 작가님들은 은퇴를 한 분들이 많고 각자 관심 분야를 공부하거나 농사를 짓고 일을 하며 글을 쓴다. 각자 다른 시간, 장소에서 살다 같은 시간, 공간에서 한 달에 두 번. 자신의 글을 발표함으로써 삶을 나눈다. 어느 때는 원고에 대한 이야기보다 각자 살아온 삶의 이야기로 조금 피곤도가 올라가기도 하고 세대 차이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삶 속에 깃든 경험이 대화 속에 풀어져 서로를 이해하는 정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작가님이 한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것이다. 도서관 수업이 끝난 후, 전문가의 가르침 없이 평범한 우리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물론 이 분들 중에는 독서회로 내공을 쌓았거나, 책을 좋아해서 일정한 목적 없이도 책을 끼고 사는 분들이 있다. 바쁜 가운데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다른 독서회에서 순서를 맡아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 준비 운동을 한 셈이다.
규칙을 정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공모에 당선되면 점심을 내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렸다. '자연' 작가님은 통 크게 뷔페에서 점심을 대접하셨다. 거의 국밥이나 국수만 먹다가 각종 해산물과 패션후르츠까지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자그마한 게 튀김도 바삭하고 고소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바닷가에서 잡아주시던 기억이 흐뭇하고 서울 여행 때 언니가 사주던 뷔페에서 맛보았던 패션후르츠를 다시 봐서 마음은 붕붕 날아다녔다.
빨주노초파남보, 글친 회원들
어느 분은 공모전 수상에 목표를, 어느 분은 그저 글쓰기가 좋아, 또 다른 분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아서. 각자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은 다르지만 자신을 내보이며 균형을 맞추어간다. 그동안 서로가 쓴 원고를 모아 문집을 만들기도 했고 공모전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면서 함께 나아간다. 같이 시작했다가 중간에 나간 이들도 있다. 일반 독서 모임이 아니고 글쓰기 동아리라서 새로운 회원 모집도 쉽지 않다. 하지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을 지닌 우리는 각자가 가진 빛을 뿜으며 어우러지는 중이다.
모처럼 거한 점심을 나눈 몇몇 회원분들은 문자조형 전시실로 옮겨간 모양이다. 단체 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낱낱의 조형물들이 모여 하나의 멋진 예술품이 탄생하듯, 각자 다른 빛깔이 모여 휘황찬란한 글친 모임은 진행 중. 언젠가 내가 밥을 살 날도 속히 오기를! ^^